요즘도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려 있나 모르겠는데 제가 공부할 때는 책에 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수필로 "규중칠우쟁론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느질에 사용하는 여러가지 물건을 의인화해서 서로 공을 다투는 것을  규방 주인이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규중칠우라는 것은 실, 바늘, 골무, 가위, 자, 인두, 다리미입니다.
그런 규중칠우처럼 의사에게도 손에 가까이 두고 쓰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약물 치료가 위주인 내과계열 의사와 수술 치료가 위주인 외과계열 의사에 따라 그 물건은 다르게 마련인데 산부인과 의사는 외과 계열에 속하므로 여기서는 외과계열 의사에게 친숙한 7가지 물건을 말씀드려 봅니다.
의중칠우(醫中七友)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실, 바늘, 니들 홀더, 포셉, 가위, 칼, 수술 장갑입니다.
물론 순전히 제가 자의적으로 정한 것입니다.
몇가지는 규중칠우와 중복되는군요.
저는 물건을 가지고 쟁론기를 쓸 정도의 재주는 없어서 간단히 소개만 해 봅니다.

1. 실
실은 피부나 절개한 장기를 꿰메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으로 바느질에 쓰이는 실과 생김이나 사용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반적 실과는 재료가 다르며 수술시 쓰이는 실(봉합사라고 함)은 크게 녹는 실과 녹지 않는 실이 있습니다.
녹지 않는 실은 나중에 제거가 가능한 곳인 피부의 상처 봉합에 주로 쓰이고 녹는 실은 나중에 제거가 불가능한 내부 장기의 봉합에 주로 쓰입니다.
녹지 않는 실의 대표는 실크라고 하는 실입니다.
혹시 그 실크?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맞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단 그 실크입니다.
실크는 녹지 않는 실이기 때문에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출된 피부 상처의 봉합에만 쓰입니다.
실크의 다른 특징 한가지는 실 중에 가장 값이 저렴한 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과대학생이나 인턴들이 실을 묶는 연습도 실크실을 이용해서 합니다.
녹지 않는 실 중에 또 많이 쓰이는 것은 나이론입니다.
혹시 그 나이론?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맞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나이론입니다.  
따라서 나이론도 노출된 피부의 봉합에 주로 쓰입니다.
실크와 다른 점은 주변 조직에 들러붙는 유착 현상이 적어서 상처를 깔끔하게 잘 아물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신 가격이 실크에 비하여 상당히 비쌉니다.
녹는 실들은 화학 제품인 덱손이나 바이크릴 등 몇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녹는 실은 캣겉(catgut)이라고 하는 실입니다.
catgut은  cattlegut의 약자인데 cattle은 소와 같은 가축을 의미하고 gut는 창자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캣겉은 소바다는 염소나 양의 소장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캣겉은 녹아 없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체내의 경우 2주 전후, 체외에서는  3주 이상 올래 걸립니다.
또한 염증 반응을 초래하기 쉬워서 피부보다는 제거하기 힘든 내부 장기에만 주로 사용합니다.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시 회음부 봉합은 과거에는 실크를 많이 사용했는데 요즘은 거의 캣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실은 색이 갈색이라 출산후에 갈색의 이상한 끈 혹은 벌래 같은 것이 회음부에서 묻어 나왔다고 놀래서 오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ㅎㅎ
사실 녹아 나온 실은 약간 꼬불꼬불해서 얼핏 보면 벌래 같기도 합니다.

2.3.4 바늘, 니들 홀더, 포셉
바늘은 일반적 바느질에 사용하는 바늘과는 좀 다르게 생겼습니다.
바느질에 쓰이는 바늘은 직선으로 생겼지만 의료용 바늘은 약간 굴곡이 져 있어 피부나 장기의 봉합이 쉽도록 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초승달처럼 아니 그믐달인가? ㅎㅎ처럼 생겼습니다.
참고전 전 아직도 초승달과 그믐달을 구분을 못합니다.
초승달은 커지는 달이고 그믐달은 없어지는 달인 건 알겠는데 모양으로는 구분을 못하겠더군요.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지만 자기 전문 분야 말고는 다른 분야에 대하여는 철저히 무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은 다른 분야의 무식가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의사의 경우 의업 외에 다른 분야로 사업을 벌였다가 망한 사례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제가 산부인과가 힘들어서 일러스트레이터나 혹은 어느 분이 말해 주신 대로 소설가라도 하면 어떨까 싶지만 저를 제대로 아는 분들은 도시락 싸기면서 말리는 이유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바늘 중에는 실을 꿰어서 쓰도록  흔히 바늘코라고 하는 구멍이 나 있는 것과 아예 구멍이 없이 실이 달려 있는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니들 홀더 (needle hofder)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느질에서는 바늘을 사람이 손으로 잡고 꿰메지만 수술에서는 사람의 복강 내부 좁은 곳으로 바늘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큰 손을 집어 넣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늘을 손으로 잡지 않고  가느다란 홀더로  바늘을 잡아서 꿰메야 하는데 이때 이용하는 도구가 니들 홀더입니다.
왼손으로 옷감을 잡고 오른손으로 바늘을 잡아 바느질 하듯이 수술시에는 왼손에 포셉이라는 집게 같은 것으로 조직을 잡고 바늘이 물린 니들 홀더를 오른손으로 잡고 꿰메게 됩니다.
물론 이는 오른손잡이의 경우고 왼손잡이는 반대로 하게 되겠지요.

5. 가위
그러나 이렇게 꿰메기 전에 사실 절개하거나 절단을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겠지요?
그때 쓰이는 도구 두개가 가위와 칼입니다.
아래 사진이 가위(의료 영역에서는 시저라고 부릅니다.)와 칼(메스 혹은 나이프라고 부릅니다) 모습을 제가 그린 것입니다.



가위는 일반 가위와 전혀 다를 것이 없이 생겼습니다.
다만 일반 가위보다는 고급 재질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가격이  식당에서 돼지 고기 자르는 일반 가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비쌉니다.
보통 싼 것도 십만원 이상 비싼 것은 수십만원씩 값이 나갑니다.
그러나 사실 가위 중에 어떤 것은 일반 가위로 대체해도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속눈썹 가위 같은 것은  같은 가위라도 미용실에 들어가는 값보다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비쌉니다.
일반용이냐 의료용이냐에 따라 거의 같은 제품이라도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가 가위 뿐 아니라 여러가지 것들이 많은데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해서 사기치는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공항 택시들이 내국인보다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는 경우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6. 칼
가위로 절개하는 것보다 섬세하게 절개할 때 쓰이는 것이 메스입니다.
메스는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데 보통 쓰이는 칼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릅니다.
요즘 보니 음식을 만드는 쉐프들은 자신만의 칼을 가지고 있고 어떤 분은 칼에 자기 이름도 새겼던데 칼을 쓰는 외과계열 의사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보통 칼이나 가위들이 크기나 모양들이 굉장히 다양해서 자신이 선호하는 칼이나 가위, 기구들이 있지만 자신만 쓰기 위해 특별히 가지고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쉐프에게 칼처럼 수술이 주 업무인 외과의에게도 칼은 소중한 데 왜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기구 값이 워낙 비싸서 개인이 구입해서 가지고 있기 어려운 점도 있고 굳이 자신만의 기구를 쓰지 않아도 되어서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만 칼이나 가위는 오래 쓰면 날이 무뎌져서 잘 들지 않습니다.
갈아도 금방 무뎌지기도 하고 이제는 돌아다니면서 칼이나 가위를 갈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대부분 새로 구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던가요? ㅎㅎ
그리고 저도 산부인과 분야에서 이십년 넘게 활동했으니 이제 장인의 경지쯤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꿈일 듯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분만 분야에는 장인이 없습니다.
해도 해도 잘 알 수 없는 것이 출산이라서요. ㅠㅠ
내과 의사들이 쓰는 청진기의 경우는 보통 자신만의 청진기를 가지고 쓰기는 합니다.

7. 수술 장갑
장갑은 소독용 장갑으로 라텍스 재질의 것이 수술시에 쓰이는데 이 라텍스에 대하여 알레르기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장갑을 필수적으로 껴야 하는 일들이 많아 고역이 됩니다.
요즘은 이런 라텍스 장갑은 요리시에도 많이 끼고 하더군요.
색깔은 살색인 것이 주로 쓰이고 간혹 파란색 장갑을 쓰기도 합니다.
외과 수술시 보통 출혈을 동반하게 마련인데 출혈이 잘 보이도록 소독포들은 초록색이거나 파란색으로 빨간색의 보색들입니다.
수술 장갑도 그런 의미에서 파란색이 있는 것입니다.

이상 의중칠우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댓글

완전 신기하고 흥미롭습니다ㅋㅋㅋ 우오!!!!!  등록시간 2016-04-01 19:10
방송 듣고 와서 읽어봤어요^^ 원장님 일러스트가 예전보다 좀 나아지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등록시간 2016-03-3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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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p15 [2019-10-15 20:14]  zoomooni [2017-11-01 00:11]  박시원 [2016-03-31 15:07]  podragon [2016-03-31 14:02]  
#2 xingxing 등록시간 2016-04-03 05:12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실크실이 가장 저렴하군요 ㅋㅋ
그 캣컽에 놀란 일인이 여기도 있습니다...
그 초승달같은 바늘을 손도 아닌 홀더로 잡고 꿰매는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힘들 것 같네요..
손으로도 바느질을 촘촘히 잘 못하는 제가 느끼기에는..

여러가지 궁금증이 풀리는 포스팅이에요!!
날도 늘어가는 심장님의 그림실력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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