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주 금요일 (4/29일) 오전 10시경에
건강한 여자아이를 출산한 박은지 산모의 남편입니다.
작년 여름에 저희 부부에게 찾아와서
아이 태명은 "여름이" 였어요.
작년 8월 경에 그러니까 그날이 음력으로 칠월칠석 날이었는데
아이가 생겼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날이었거든요.
회사에 있는데 그 소식을 아내로부터 들었던 그 때의 기억이 여전한데
이렇게 10개월이 지났다는 것이 참 감개무량합니다.
일요일에 병원에서 나와 조리원에 있으니
지난 며칠 간의 시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아요.
분만하는 과정에서 심 원장님께서 하셨던
"아이는 엄마가 힘을 줘서 낳는 거에요. 우리는 옆에서 도와주는 것 뿐입니다"
이 말씀처럼
출산은 온전히 산모의 노력과 고통이고
아니 출산뿐만 아니라 임신부터 아이를 기다리는 10개월동안
엄마의 몸과 마음씀이 전체의 9할이 넘는 것 같아요.
아내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제가 보고 겪으며 느꼈던 감정들은
온전히 아빠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것들이라서
이미 출산을 겪으신 아빠들, 혹은 이제 출산을 앞두신 아빠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제 아내와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지난 10개월을 되돌아 보며 두 가지 생각을 남깁니다.
#1 생각과 행동이 굉장히 단순해졌습니다
아이를 갖고 난 이후로
제 변화 중 하나는 남편으로써 생각과 행동이 굉장히 복잡스러운 것들이 없어졌다는 점이었어요.
성격이 깊게 생각하는 편이 있어서
혼자 이런저런 잡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ㅋㅋ)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작년 여름에 처음 알게 된 뒤부터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 참으로 단순해집니다.
아직은 아이를 초음파 사진으로만, 태동으로만 어렴풋이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제 아내에 제 거의 대부분의 사고행동이 초점이 맞추어지더라구요.
이제 만 서른을 갓 넘긴 우리 부부가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그러니까 진짜 어른이 된다는 ...... 그런 자격이 있을까, 그런 나이인 것일까에 대한 생각이
처음에 몇 번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몇 번의 쓸데없는 잡생각을 거치고 나니
어떻게 하면 아내가 가장 편안하게 있을 수 있을까, 아이가 가장 편안하게 자랄 수 있을까
이것에만 염두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이 단순해지고 나면
행동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는 것 같아요.
산모라면 누구나 읽었보셨을 임신/출산 노란 책에서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구절이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줘야 한다" 요 구절이었는데요
집안일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집안일을 남편이 해야 하는 겁니다, 라는 생각이었던거죠.
이렇게 굳게 마음을 먹어도
모든 일을 제가 다 할 수 없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못했고요.
만삭인 아내는 휴직을 내고 출산 한 두 달 전에 집에 있게 되었는데
무거운 몸에도 저녁식사를 차리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가슴이 아플 때가 많았거든요.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이 10개월 동안
아내와 아이가 가장 편안하게 있을까 그런 생각 하나만에 집중하게 되는 건
아마 모든 아빠들이 그러셨을 것 같고,
그리고 더 많은 아빠들이 그래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2 분만 때 정작 굉장히 차분해집니다
사실 출산 전에 걱정을 속으로 많이 한 것이
혹시 내가 분만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제어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내는 옆에서 진통으로 힘들어하고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는 힘을 주라고 소리치시며 분주한 이 상황에서
아내가 진통이 너무 심해서 막 울고 화내고 그러면 어떡하지 ......
혹시 진통을 덜어주려고 같이 라마즈 호흡하다가 내가 먼저 호흡 탈진을 하면 어떡하지 ......
아니면 탯줄 자를 때 손이 덜덜 떨리면 어떡하지 ......
나는 100% 울 것 같은데 휴지를 갖고 가야 하나 ......
이런 잡생각을 출산 2주 전부터 몇 번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정일을 며칠 지나 금요일 오전에 갑자기 진진통이 찾아오더라구요.
그 전날부터 무언가 분만과 관련된 징후들이 살며시 나타나긴 했는데
아내가 배뭉침만 있고 진통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밤에 병원과 심 원장님께 통화하여 다음 날 오전에 내방하기로 하고 잠을 잤거든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8시 조금 못 되어서 4~6분 주기로 심한 진통이 찾아와서
조금 기다렸다가 병원으로 바로 향했지요.
여기서부터는 아빠의 시선인데,
먼저 아내는 병원으로 올라가고
저는 주차타워에 주차를 하고 3~4분 정도 늦게 병원 3층으로 올라갔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더라구요.
소파에서 일단 기다리라는 말에 멀뚱하게 서 있는데
간호사님이 분만실로 들어오라고 하셔서 들어가니
이미 아내가 분만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심 원장님께서 이미 자궁문이 8~9cm 열려 있고 아이가 한 두 시간 내로 나올 거라고 이야기하시는데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거 같았습니다.
가진통도 없었던 것 같고 이제 막 병원에 왔는데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기분이었거든요.
아내는 진통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 하고,
아마 대부분 남편들이 저처럼 그 분만침대 옆 소파에 앉아 저처럼 망치 여러 대 맞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 정신차리자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구요.
여기서 저까지 같이 이 빠른 속도에 올라타 버리면
될 것도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내 옆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지는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만) 호흡을 같이 해주면서
진짜 분만이 시작되었을 때 잘하고 있고 잘 참고 있다고 이야기를 계속 해주었습니다.
사실 상황을 바꿔서
제가 진통을 겪는 아내 입장이라고 한다면
옆에서 힘내라고 하는 남편 말이 귀에 들어올 것 같지는 않긴 해요.
마침 또 심 원장님이 연결한 아이팟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op46 1번 "아침" ......
제가 어릴적에 집에 큰 전축이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이면 아버지가 가끔 클래식 CD를 틀어놓아서
음악에 맞춰 일어나곤 했는데
그때 종종 들었던 음악이었죠.
아니 생각해보니 아까 "아이가 한 두시간 내로 나올 거에요" 라고 심원장님이 말씀하시면서
무덤덤한 손길로 아이팟을 오디오에 연결시키고 계셨네요.
원장님이 흰 가운을 벗으시고 녹색 수술복(?)과 두건을 마치 전투복처럼 착착 착용하시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 이제 진짜 분만이 시작이구나 라고 생각이 되었고
몇 차례 아내의 진땀나는 분만 노력 끝에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답니다.
다른 출산 후기에서 산모분들이 직접 체험하시는 분만의 느낌들, 감각들
이런것은 남편인 제가 감히 알 수는 없는 것이지만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하나 있어요.
사실 소파에 앉으면 분만하는 공간이 천으로 가려져 있어서 남편 시선에서 잘 보이지는 않는데
저희 아이 머리가 불그스레한 양막으로 뒤덮인 채 밖으로 나와 있는데
원장님이 살살 손으로 건드리시면서 아이를 빙글 돌리시더라구요.
그렇게 하니까 어깨가 슉 하고 빠져 나오더니
또 한 번 빙글 돌리시니까 그제야 팔과 다리까지 한 번에 스르륵 하고 나오는 광경이었어요.
아
저렇게 아이가 태어나는구나
저렇게 아이가 엄마 몸 속에서 빠져나오는구나
그리고 이제서야 출산의 많은 과정 중에서 상당히 마지막 단계까지 온 거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답니다.
탯줄을 자르는 가위 포지셔닝을 잘 못해서 한소리 듣기도 했지만
제가 처음에 걱정했던 많은 우려들...... 사실 그건 전혀 생각나지도 않았어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로 짧은 거리지만
아침에 심한 진통이 찾아와서 차로 이동하는 그 순간에
백미러로 본 뒷좌석 아내 모습을 본 이후로는
남편이 차분하게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네요.
아내와 제가 한 생명의 엄마 아빠가 되어간다는
성장과 배움의 경이로움 한 가운데 서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의 시선으로 본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수 많은 감각들 중에서도
꼭 남기고 싶은 건 이 두가지였던 것 같아요.
분만 이전에도 밤늦게 직접 전화 주시고,
분만 이후에도 수시로 회복실에 오셔서 귀기울여주셨던 심 원장님께 참 감사드리고
항상 친절하게 맞아주셨던 모든 간호사 선생님께도 감사한다는 말씀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아내와 모든 산모님들,
10개월과 분만의 모든 과정을 견디신 것을 존경합니다.
예비 아빠, 이미 아빠분들,
모두 아내와 아이에만 생각을 맞추시고, 항상 침착하고 차분하게 곁에 있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박은지 산모 남편 황정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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