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부인과 의사들의 마음은 같습니다.
아기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출산되고 산모 또한 안전하고 편안하게 출산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산부인과 의사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사 특히 산부인과 의사가 큰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몇가지 점에서 일반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에 임하면서 특히 난산이나 쉽지 않은 출산 상황에 닥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주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 다음의 세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째, 의료 분쟁에 대한 불안
둘째, 병원 경영에 대한 고려
셋째, 공명심


위의 세가지 점에서 어떤 자세를 견지하느냐에 따라 의사의 결정은 이쪽이 될 수도 저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산모와 아기에 대한 걱정과 잘 낳도록 도와주고 싶은 공통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비하여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입니다.
위 세가지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당사자인 의사의 입장에서는 일생의 업을 계속 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도 관계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분만의사로서의 모습과 자세 철학을 결정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분쟁은 저도 몇차례 겪기도 했지만 많은 의사들로 하여금 산부인과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고 현업에 종사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도 이 일을 계속할 지 말지 고민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쟁 또는 의료 사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닥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측이 가능한 경우들은 위에서 말한 난산의 경우들인데 그걸 피해가기 위한 묘방도 전혀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는 미처 대비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흡입 분만을 시도하기보다는 제왕절개를 선택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고 결국 안해도 될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산모와 가족들로부터 불만을 사게 되고 의사 환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경영에 대한 고려도 간단치가 않습니다.
어떤 의사가 돈을 위해 안해도 될 수술을 하겠나 싶지만 진행이 잘 되지 않아 수술의 가능성이 높은 산모가 수술을 강력히 원할 때 그것을 설득해가면서 자연분만을 시도한다는 것은 분쟁의 문제도 문제려니와 병원 경영에서도 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산모를 경영을 위해 굳이 수술을 제안하는 의사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경영적 고려가 수술의 결정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있지만 의사가 경영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의료 환경이 어려운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산부인과 경영 환경은 그런 점에서 우려스러운 바가 적지 않은 것이 현재 우리의 실제입니다.
따라서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빈 곳간에서 양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 사회에서 산모나 환자가 배고픈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맡겨야 한다면 정말 참담하다 하지 않을 없습니다.

마지막이 공명심으로부터 비롯하는 잘못입니다.
특히 대학 병원이나 유명 병원 또는 수중 분만 등 특별히 차별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서 생기는 잘못입니다.
의료 서비스 측면에서 모든 환자나 산모들이 똑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천편 일률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공명심으로 하여 모든 것을 그 한가지로 설명하고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이는 딱딱한 막대자로 둥그런 공을 재는 것과 같습니다.
평평한 물건은 딱딱한 막대자로 재도 되고 그게 더 편하지만 둥근 공은 막대자로는 정확한 길이를 잴 수가 없습니다.
막대자로 잰 공의 길이야 수치에 있어 조금 틀리게 될 뿐이지만 환자나 산모를 대상으로 한 의료에서는 건강과 생명으로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공명심이 혹시 자신의 내부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노력이 매우 필요하지만 의사라는 직종이 가진 자긍심에 더하여 남이 안하는 것을 하면서 듣는 박수 소리 때문에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데 있어 잘못을 범할하는 경우들을 드물지 않게 보았습니다.

위 세가지는 의사로서 조심해야 할 중요한 3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이는 전적으로 제 개인적 견해이기는 하지만 20여년의 오랜 의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경험에서부터 우러나서 드리는 고백이며 저 또한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저 저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조심할 뿐입니다.
의사는 그 누구도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기울이는 그런 노력이 잘못된 의료 환경으로 가지 않도록 의사가 기울일 수 있는 노력의 전부입니다.

물론 바람직한 의료 환경이 되지 못한 것이 의사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부 제도의 잘못과 일반 국민의 오해와 편견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에 관한한 의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는 의사의 반성도 분명히 있었으면 하는, 아니 가장 우선적으로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사 집단의 권익을 추구하는 각종 단체의 활동을 우호적으로 보지 않고 일체의 힘을 보태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렇게 책임과 윤리에 대한 주장을 생략한 채 권익과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의료 환경을 만드는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라 서로간을 적으로 만드는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것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그에 앞서서 저는 우리 자신, 나 자신을 돌아보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바람직한 의료 환경에서 아직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갈길이 매우 멉니다.
그러므로 이 글도 그런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하는 자기 반성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가장 우려하고 조심하려고 하는 것은 공명심입니다.
제가 공명심에 상당히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분쟁이야 겪어 볼만큼 겪어 보았지만 그래서 의료 분쟁의 우려로 흡입기를 내다 버리라는 아내의 성화도 있지만 무시하고 아직도 제왕절개를 해야할만한 상황에서도 흡입 분만을 우선 시도해 보고, 경영의 문제도 병원 문을 닫으면 그뿐이지 하는 생각으로 경영적 고려도 거의 하지 않지만 마지막의 공명심은 저를 잘못된 판단에 빠트릴 위험이 가장 높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난산 끝에 자연분만을 하게 된 산모들의 칭찬과 가족들의 감사의 인사 , 다른 의사 같았으면 수술하고 말았을텐데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오만 혹은 자만심, 큰 범주에서 그런 공명심이 제가 가장 조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의사로서,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높은 자긍심을 가진 저와 같은 의사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료 뿐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그런 공명심이 결과적으로 악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요.
알고 있지만 잘 안되니까 걱정이기는 합니다만.......

댓글

검진 받으러 갈 때마다 신뢰감이 듭니다 요즘세상에 이런 병원이 있다는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등록시간 2018-07-26 13:24
늘 원칙과 양심을 지키시려고 노력하시는 원장님의 모습 존경합니다.  등록시간 2018-05-1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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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ung22 [2022-08-02 16:01]  이예원 [2017-12-25 07:39]  화징이맘 [2017-06-14 09:39]  pingkish [2016-04-1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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