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많은 진화와 발전을 거치면서 현재의 위치까지 왔다. 그 중 하나가 농경의 시작이라고 한다. 수렵과 채집에 비하여 농경이 가진 장점은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비교적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을 하면 먹을 열매가 거의 없거나 사냥감을 잡기 어려운 시기에도 굶어 죽는 것을 피하기가 더 쉽다. 가을에 수확한 것을 두고두고 먹기 위해서는 저장을 해놓아야 한다. 그렇게 저장을 돕는 도구 중의 하나가 그릇이다.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은 빗살 무늬 토기이다. 음식을 저장할 수 없다면 인간은 먹이를 구하거나 만들기 위해 삶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매일 먹을 거리를 구하기 위해 애를 쏫아야 했을 것이다. 먹을 거리의 저장이라는 방법이 생김으로써 굶어 죽는 것으로부터 상당히 안전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어느 때는 휴식을 취하고 어느 때는 유희를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무언가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전이다. 물론 저장할 음식을 얻기 위해 흘려야 하는 땀의 양도 엄청나고 저장이 가능해진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을 거리를 저장하기 위해 매일 수고를 쏫아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런 방법이 없었을 때에 비하면 훨씬 더 효율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음식을 저장하는 방법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면 동면하는 곰처럼 체내에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추운 겨울은 그저 잠만 자면서 지내는 방법을 택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남부의 아르데슈콩브다르크에서 1994년에 발견된 동굴에는 3만6000년 전에 만들어진 벽화 1000여 점이 8500㎡ 이상의 넓은 벽면에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 동굴 벽화가 인간이 남긴 가장 오래전 그림이라고 하는데 이 동굴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쇼베 동굴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오래전 조상들이 왜 사자 곰 말등 여러 동물의 모습과 인간의 손바닥 자국을 그림으로 남겼는지는 모른다. 사냥을 앞두고 기원의 의미로 남겼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림을 그린 당사자에게 들을 수 없으니 그저 주장일 뿐이다. 무슨 목적이었든 간에 동굴 벽에 그림을 남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동굴 벽에서 발전해서 점토판이나 거북이 등껍질에 혹은 파피루스에 그림이나 글을 남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선 바탕이 되는 글판을 마련하는 것이 먹고 살기 바빴을 당시의 현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천적으로부터 공격당할 위험 또한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천적이 없어진 지금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종이와 펜, 혹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이 생각을 표현할 도구를 마련하는 일은 쉬워졌다. 도구에 대한 가격이 대폭 하락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누구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오래전 선사시대에도 누구나 글이나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무리의 우두머리거나 아니면 무리에서 그런 역할을 부여 받은 소수의 누군가였을 것 같다. 동굴의 벽은 제한되어 있으며 재료도 한정적이었을 것이므로 그저 아이의 장난처럼 낙서하는 기분으로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도구에 구애 받지 않는 대신 내용이 어떤가에 따라 주목을 받을 수도 아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흔적없이 사라지지 않을 만한 글이나 그림을 남기는 것 역시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염색체는 어떤 생명체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이런 유전 정보는 생명체가 죽으면서 소멸된다. 다만 2세를 통해 그 정보가 넘겨진다. 머리 색깔이나 얼굴 생김새, 성격적 특성 등 거의 모든 것이 넘겨진다. 어떤 점에서 보면 자식은 자신의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또 다른 생명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의 유전 정보의 저장 뿐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가장 오래 기억해 주는 사람 또한 자식이다. 부모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친구나 배우자는 자신과 비슷하게 떠나므로 가장 나중까지 가장 많은 것을 기억해 주는 것은 자식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삶의 모습이 가장 충실하게 2세의 기억에 살아 남아 있게 된다. 즉 저장되어 있다. 나를 기억해 주는 2세가 있으므로서 혹은 3세 또는 혈연 관계가 아닌 남이라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므로서 내 존재가 내가 살아 있는 순간에만 있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라는 허망함에 덜 시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인간이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생물학적 죽음과 달리 사회적 죽음이라고 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는데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마저 가져야 한다면 그런 두려움과 허전함은 대폭 증가할 것이다. 나는 2세를 낳음으로써 더 편안한 삶을 살 것이라는 거짓말은 못하겠다. 세 아이를 키워본 아빠로서 장담컨데 죽을 때까지 속을 끓이기에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높이는데도 크게 한몫 한다. 그런 숱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게 아이들이 있어서 확실히 좋은 것 한가지만 꼽으라면 그것이다. 내가 죽는 순간에 그리고 죽어서도 아이들이 살아서 아빠를 기억해 줄 것 같아서 조금은 덜 허전할 것 같다는 사실. 내게 아이들이 있어서 좋았던 것들이 그것 뿐은 아니겠지만 꼭 아이들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정서적 위안은 애완 동물을 통해서 또는 인형이나 장남감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편안한 노후나 기댈 언덕은 모아 놓은 재산을 통해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단 한번 사는 인생이 끝날 때도 끝났다는 허전함을 덜어줄 수 있는 그것만은 내 아이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먹고 살기에 부족하지 않게 음식을 (돈을) 저장하기를 권한다. (나는 실패했다)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 예술적 재능을 오래도록 전달할 수 있는 글이나 그림, 음악을 남기기를 권한다. (나는 실패했다. ㅠㅠ) 마찬가지로 나는 모든 임신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출산을 권한다. (내가 유일하게 성공한 것이다. ^^) 내 존재의 의미가 내 삶과 함께 끝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낳은 아이들, 나를 기억해 주는 아이들, 나를 닮은 아이들이 있어 유한한 삶의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