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성취와 성장의 기쁨은 얼마 못 가 다음달 월세와 홍보, 수익을 적정하는 노파심으로 뒤바뀌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우선 불안감이 너무 컸다. 오늘은 장사가 잘 되었어도 당장 내일 매출은 어떨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다. 장사에는 변수가 많았다. 추위나 미세 먼지 같은 날씨부터 사회적인 이슈, 신간 라인업에 따라  매출이 들쭉날쭉 했다. 매번 다음달 월세를 걱정하면서 언제까지 서점을 계속할 수 있을까?"
송은정 작가의 책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라는 책의 한 문장이다.  



지금은 무망한 것이라 생각해서 포기했지만 몇 년 전까지 내  꿈 중에 하나는 서점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점 관련 책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 중에 얼마전 내  눈에 들어 온 책이 송은정 작가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라는 책이었다. 책방이든 다른 것이든 서점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랑,  그리고 충고를 적은 책들이 많다. 인도의 모든 영화는 반드시 마지막에 모든 등장 인물이 춤을 추면서 끝나야만 한다고 들었다. 그것만큼 이상하지는 않지만 착한 주인공이 원수도 못 갚고 비극으로 생을 마감하는 영화나 소설은 없다. 현실에서는 착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고 원수를 갚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나 소설은 그렇지 않다. 물론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소설처럼 성공담이 아니고 이게 소설이기는 한가 싶은 것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소설이나 영화의 결말은 대동소이하다. 불쌍한 사람이라는 뜻의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형사 자베르만에게 잡혀 평생 감옥에서 살다 죽는 결말의 소설이라면 우리가 빅토르 위고라는 소설가를 알게 되었을까?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결혼하지 못하고 재를 뒤집어쓴 부엌데기로 평생 혼자 쓸쓸히 살다가 독거 노인으로 고독사했다는 내용이라면 과연 지금처럼 유명한 동화가 되었을까? 흥부가 제비의 도움으로 형인 놀부에게 멋지게 복수하지 못하고 평생 형 밑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의 흥부전이라면 그래도 역시 우리가 흥부와 놀부 형제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을까? 소설이나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에세이조차도 성공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들은 주목을 받기가 어렵다. 실패담도 다음의 성공을 위한 디딤돌 정도의 의미라면 모르지만 그저 단순한 실패담을 적은 글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마도 현실이 이미 충분히 답답하고 삶이 구차한 데 역시 답답한 영화나 소설 혹은 에세이를 보거나 읽고 싶은 사람은 있다해도 소수일 것이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는 고사하고 고구마 백 개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댓가라면 나도 그런 것에 아까운 돈, 귀한 시간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부터 망한 이야기를 쓰다니. 참신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왜 망했는지. 그리고 책방을 닫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지. 책은 책방을 열기까지의 설렘과 희망 그리고 닫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감정을 자제하고 담담하게 써내려 갔다. 아마도 글에 쓴 것보다는 훨씬 마음도 아프고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나도 작지만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으로 그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책이든 서점이든 아니면 조그만 가게이든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붓고 시간을 들인 것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난 아직 부모님 모두 건강히 살아 계시고 속은 썩이지만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데 아마 자식을 잃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나는 이번 생에서 책방 주인이 되는 것은 포기했지만 부모님의 입장에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은 안겨드리지 않는 것이 지금 남은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 건강 관리도 좀더 신경 써서 하고 싶지만 생활이 불규칙하다 보니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두분 부모님이 모두 80세 전후로 장수하는 편이시니 나도 그런 유전자를 타고났기를 바랄 뿐이다.  

10여년전 분만실을 닫을 때 “분만실을 닫으며”라는 글을 모 신문사에 실었던 적이 있다. "책방을 닫았습니다."라는 말이나 "병원을 닫았습니다." 또는 "오늘 아들이 죽었습니다." 라는 말은 살면서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반 백년 이상을 살아보니 삶이라는 것에 대하여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이 살면서 알 수 있는 것들도 상당히 많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두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미래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다. 책방이든 병원이든 작든 크든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모르는 그 둘을 매일매일 새로 만나야 한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사실 그런 것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기는 하겠다. 숨이 붙어 있는  한 마주 해야 하는 엄중한 운명이다.

라마승들은 매일 아침마다 왼쪽 어깨에 앉아 있는 상상 속의 새--미래를 내다본다는--에게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 날인가 하고 마음 속으로 묻는다고 들었다. 자신의 마지막 날인지 아닌지를 담담하게 물어볼 수 있는 수도승이 아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오늘 사업장을 닫지 않아도 될지, 혹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산다. 과거 학창 시절에는 사자 가슴은 아니라도 소 가슴 정도는 되어서 세상에 무서운 것이 별로 없었는데 산부인과를 하면서부터는 새 가슴이 되었다.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혹은 아내와 밥을 먹다가도 휴대폰 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한다. 혹시 아까 출산한 분이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산전 진찰 받던 산모에게 갑자기 심각한 이상 증상이 생겼다고 급한 전화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런 탓에  내 친구나 지인들은 내게 직접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내게 내용을 전달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머니 조차도 내 안부를 내게 묻기 보다 아내에게 묻고는 한다. “오늘 병원을 닫았습니다” 라는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결국 능력이 모자라서 병원을 닫았다는 것 때문에 우울감에 빠지고 자격지심이 들지 아니면 더 이상 휴대폰 벨 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는 새 가슴으로 살지 않아도 되어서  안도의 마음이 들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알게 되겠지만....
그 언제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 올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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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eeun [2018-05-09 06:55]  daphne [2018-05-07 20:42]  podragon [2018-05-07 12:35]  hanalakoo [2018-05-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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