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을 먹는 혼밥, 혼자 술을 먹는 혼술,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
다른 사람과 꼭 함께 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위에 적은 것 외에도 아주 많다.  아이들 동요 중에 '혼자서도 잘해요' 라는 제목의 동요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때는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칭찬이다. 먹는 것, 걷는 것, 심지어 똥 싸는 것조차 혼자서 할 수 있다면 칭찬을 받는다.  커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칭찬은 아니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제부터는 혼자서 하는 것에 더해서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도 잘 해야 하고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노래도 잘 불러야 한다. 더 나이가 들어 사회에 나가면  혼자서 해야 하는 일들은 그것이 업무든 취미 생활이든 칭찬의 대상이 아니다. 잘 해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중간 정도만 해도 된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앞서 가면 시기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이때 혼자서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칭찬의 대상이나 격려의 대상이 아니고 그저 취향의 문제가 될 뿐이다. 결혼처럼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해도 결정은 최종적으로 당사자에게 달려 있다. 노년에 접어들면 무엇이든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함께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때 무언가를 혼자서 한다면 좋아서라기 보다는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다.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사적인 시간을 함께 할 친구가 없을 때다.  

혼자서 하는 활동에 대하여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자연스러운 사회 변화이므로 굳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죽는 순간 만큼은 혼자서 죽는 것을 바라는 사람도 없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혼자서 이 세상을 끝내는 것은 자살하는 것이 아니면 고독사다. 노인 고독사는  이웃 일본에서는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아무도 임종을 지켜 보아주지 않아서 상당한 시일이 경과한 뒤에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죽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있다기보다 혼자서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어떤 누구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태어나는 일이다. 혼자서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부모가 둘다 함께 있거나 최소한 어머니가 있어야 태어날 수 있다. 요즘은 대부분 병원에서 출산하니까 출산을 돕는 의사에 간호사까지 3명 아니면  4명이 옆에 있다.  죽는 순간까지는 몰라도 태어나는 순간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이때 혼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일 자궁 안에서 태어나는 태생이 아니라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 동물이라 때로 어머니가 옆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경우였다해도 지금처럼 종족이 유지되고 번성했을지는 모르겠다. 거북이처럼 수백 수천개의 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한개 어쩌다 두개쯤의 알을 낳고 그 알이 10달까지는 아니라도 단 한달 정도 만이라도 밖에서 알의 상태로 혼자  있어야 한다면 어땠을까 싶다. 공룡이 멸종하고 포유류가 살아 남은 것은  추운 빙하기에  알로 태어나 밖에 노출되어 얼어 죽지 않고 모체의 따뜻한 체내에서 거의 다 자란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화생물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니까 인간이 알의 상태로 혼자 있다가 혼자 껍질을 깨고 태어나 혼자 사방의 적들을 가장 먼저 만나지 않고 자신을 지켜줄 어머니가 있는 곳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어머니에게도 그렇지만 아기에게는 무한한 축복이다. 외부의 포식자에 대하여 방어할 힘이 전혀 없는 아기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지켜줄 부모와 함께 있는 것보다 안전한 것은 없다. 부모와 함께 있다는 것은 생존 확률이 가장 높은 방식일 뿐 아니라 원만한 정서를 지닌 인간으로 자라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먹고 노는 것은 이미 그렇게 되었지만 일하는 것에서도 그렇고  앞으로 많은 부분에서 인간이 혼자서 할 수 있도록 기술이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태어나는 것만은 앞으로도 혼자서 할 수 없게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의학이 발달해서 인공 자궁에서 부모의 관찰과 보살핌 없이 산부인과 의사를 겸한 기계 로보트가 버튼을 누르면 유리관처럼 생긴 통의 문이 열리면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은 정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부인과 의사의 필요성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삶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기계와 대화하고 기계와 놀고 기계와 함께 일하는 세상이 온다. 더불어 모든 불편한 것, 모든 힘든 것, 모든 번거로운 것은 기피의 대상이 되어 기계가 담당하고 인간은 그저 즐거움, 쾌락만 쫓는 삶을 사는 세상이 되면 그것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출발지가 다르면 과정이 다르고 도착지가 다르다.  태어나는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한국 1인 가구의 수는 약 520만 명이라고 한다. 전체 가구의 약 27.2%다. 이 수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실제의 만남보다는 혼자서 생활하면서 스마트폰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하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흔히 SNS로 연결되어 있으면 혼자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은 착각에 빠진다.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의 대화는 사실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이나 목소리가 아니고 모니터라는 기계를 통해  얼굴을 보고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듣는 것이다. 손으로 터치하는 것도 상대의 손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액정이다. 이것이 실제의 만남이나 대화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1957년 어떤  심리학자가 새끼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한가지 실험을 했다. 가슴에 우유병을 달고 젖을 주는 '철사 어미'와 젖은 없지만 부드럽고 폭신한 '헝겊 어미' 두 종류의 어미를 만들어 새끼 원숭이들의 옆에 두었다. 새끼 원숭이들은 배가 고프면 잠시 '철사 어미'에게 가서 젖을 먹기는 했지만 배가 부르면 몸을 비빌 수 있는 천으로 만든 '헝겊 어미'에게 가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실제의 접촉 혹은 실제에 근접하는 접촉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나는 철제나 스마트폰의 유리가 얼마나 다른 지 모르겠다. 유리를 통해 보는 상대의 글이나 기계를 통해 전달되는 말이 옆에서 그 사람의 숨소리와 함께 직접 듣는 목소리를 완벽히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 차려진 한끼 밥상에서 하는 식사와 각종 영양 성분을 담은 종합 영양제를 먹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그 둘이 같은 부분이 있다면 하나 뿐이다. 그렇게 하면 기본적인 생존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는 것의 목적이 죽지 않는 것인 사람에게는 그 둘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혼자서 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고 혼자서 해야 할 것들도 있고 혼자서 할 수 밖에 없는 순간도 생긴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많은 기간을 혼자서 보내야 한다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함께 하고자 할 때 할 수 없는 삶은 절대 행복한 삶이 아니다.


혼자서 병원을 운영한 지 이제 정확히 1년이 되었고 집에 들어가지 못한 지도 1년이 되었다. 진료도 하고 출산도 돕고 가끔 아내도  병원으로 와서 함께 저녁을 먹기는 하지만 지난 1년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냈다. 내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시기에 속한다. 아마도 90%의 시간은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어 나태해져서 밤 늦게 군것질도 하고 운동도 하지 않고 게을러져서 육체적으로 더 쇠약해졌다. 웃을 일은 더 줄어 들어서 한 달에 한번도 웃을 일이 없다.  정신력이나 의지력은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요즘 보니  정신도 상당히 허약해졌다. 혼자라는 것이 보기보다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점점 그런 상황에  적응이 되어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비만이 너무 심해지면 일어나서 운동을 하기 어렵다. 운동을 하지 못하면  점점 살이 쪄서 비만이 심해진다. 악순환이다. 혼자서 오래 지내다보면 점점 그것이 익숙해지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번거롭고 신경이 쓰인다.  피하게 된다. 혼삶 (혼자서 거의 대부분의 생활을 꾸려 가는 것)이 과연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다만 다른 이들에게 이런 삶을 권하지는 않겠다. 결혼하라는 말로 오해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결혼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외 친구나 애인과 함께 하는 삶, 아니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삶, 자녀와 함께 하는 삶 모두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면 오래 오래 함께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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