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윤동주 님의 시 "별 헤는 밤"의 첫 부분에 나오는 문장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여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거나 혹은 "겨울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라고 해도 문장은 되겠지만 이 시의  아련한 느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추측하건데 시인은 가을 자리에 봄이나 그외 다른 계절도 넣어 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 문장에는 꼭 가을이어야만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에 문외한인 내게도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다음에 여름이나 겨울이라는 단어가 오는 것은 같은 을로 끝나는 운율 상의 조화를 별개로 하더라도 너무 어색하다.

물론 가을은 가을 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계절은 계절마다 그 나름대로의 특색과 운치가 있다. 그래서 봄이나 여름 등 다른 계절을 소재로 한 시들도 많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우리나라의 장점으로 4계절이 뚜렷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가을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실 효과로  전 지구적으로 기후 변화가 초래되고 있어 우리나라는 온대 기후에서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고 들었다. 체감상으로는 봄과 더불어 가을은 한달이 채 못되어 지나가 버리고 마는 듯하다.  짧다고 아쉽고 길다고 지루한 것은 아니겠지만  덥고 추운 여름과 겨울은 차라리 짧게 지나가고 적당한 기온의 봄과 가을이 길었으면 하는 욕심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은 봄과 가을이라는 계절은 겪어 보지 못하고  6개월의 엄청 더운 여름과  6개월 엄청 추운 겨울 속에서 살게 될 것 같다. 가을은 미리내니 반딧불이니 하는 것들처럼  그저 문학 작품 속에서나 아니면 역사책에서만 그 흔적을 보게 된다면 정말 삭막한 일이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좋아한다고 해서 1년 중 가을만 11달로 두고 나머지 3 계절은 한달에 다 몰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성장을 돕는 봄과 여름이 더 길기를 바랄 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석달은 고사하고 두달 혹은 채 한달 밖에 되지 않고 지나가서 더 아쉽고 그립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점도 있을 것이다.

시월은 가을이다. 그 가을이 거의 지나가고 있다.
멋진 시를 읊으면서 가을의 정취를 흠뻑 만낄 할 수 있는 감성은 귀밑에 흰머리가 나타나면서 쫓기듯 사라졌다. 수필가 이효석 님처럼 낙엽을 태워서 매케한 냄새를 맡는 것도 도시에서는 감수해야 할 댓가가 너무 커서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고향 가는 흙길 위가 아니고 딱딱한 아스팔트 위이기는 하지만 거리에 나가 낙엽이라도 한번 밟아 보는 것. 별은 몇개 없지만 하늘에 별만 있는 것은 아니니 가을 밤 하늘을 눈에 담아 보는 것.
까딱하다가는 아쉬워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  인생이다. 지나가 버리기 전에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여름처럼 희뿌연 회색의 밤 하늘도 아니고 그렇다고 차갑도록 새까만 겨울 밤 하늘도 아닌 가을 밤 하늘만이 가진 색감이 있다. 깊고 그윽한 가을 밤 하늘을 눈에 담기 좋은 날이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삶의 길이나 가진 것의 양이 아니며 그 내용이라고 한다. 인생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계절 또한 마찬가지다.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은 아니지만 오늘 밤 조금 두터운 스웨터를 입고 밤거리로 나서 본다. 횡단 보도의 신호등 초록불이 한두칸 만 남기고 깜빡거린다. 빨리 건너 가야겠다. 해에 떠밀려 산그늘이 멀어져 가는 것처럼 저 길 건너에서 가을이 그 끝자락을 서서히 거두고 있다.









첨부한 사진은 밤에 찍은 것은 아니고 며칠전 경의선 숲길을 걷다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눈치 채셨겠지만 초록의 잎이 겨울로 들어가기 전에 낙엽으로 변하는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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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bud19 [2018-10-24 09:09]  podragon [2018-10-22 16:10]  navi3561 [2018-10-2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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