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따릉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용 자건거)를 타고 망원동 유수지 체육 공원에 놀러 간다. 자건거로 2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서 30분 이상 걸리는 곳은 가기 부담스러운 내게  적당한 거리다.  그 체육 공원 옆에 특이한 이름의 카페가 있다. 낙랑 파라라는 생소한 이름의 카페다.
젊은 시절에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사먹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조금 부담스럽다. 한끼 식사값보다 적지 않은 커피는 친구나 지인과 함께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혼자 가서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쉽게 하기 어려워서인지 카페에서 커피 한잔 시켜 놓고 노트북 펴놓고 글을 쓰고 책을 보는 것이 내게는 로망 중의 하나였다.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쓴다고 글이 더 잘 써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해리 포터를 쓴 조앤 롤링이 이용했던 카페라거나 헤밍웨이가 앉았던 자리라는 문구를 선전하는 카페들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낙랑 파라 카페가 마음에 드는 점은 내부 장식이 빈티지한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가하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연희동에 있는 낙랑 파라 말고 망원점 이야기다. 아래 사진은 얼마전 망원 지점 낙랑 파라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다.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는 주인공 톰 크루즈에게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묻는 대사가 3번인가 나온다. 그 질문에 대하여 주인공이 무어라고 말했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대충  꿈과 착각이  아닌 실제의 인생 그 자체를 누리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처럼 당신은 언제가 가장  행복합니까? 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으면 과연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까?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해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행복이 있다고 믿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살면서부터는 힘든 출산을 무사히 마쳤을 때 느끼는 보람이 행복감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그러나 어떤 때가 행복이었든 그 모든 경우에 지속 시간은 짧았다.
배고픈 상태에서의 맛있는 음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꿀맛이다. 맛있는 음식을 한번 먹고 행복감에 여러날 도취되어 며칠씩 굶는다면 굶어 죽는 것은 시간 문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포옹 혹은 섹스는 큰 기쁨을 주고 행복감에 젖게 한다. 그러나 그때의 행복감과 희열의 지속 시간이 길었다면 한번의 섹스로 만족하여 몇년동안 섹스는 하지 않고 지내는 커플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2세를 낳을 수 없고 소멸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행복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생물이 존속하기 위한 필수 조건일 지 모른다는 누군가의  주장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니다.  

영원한 행복은 없다. 또한 영원한 불행도 없다. 이런게 행복일까 라고 생각하는 한 순간이 있고  난 왜 이렇게 불행할까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어떤 순간이 행복일지 불행일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행복이 외부의 조건에 달렸다면 부탄처럼 열악한 경제 환경인 나라들의 국민의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행복은 여유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편안함 속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빈티지스러운 카페에서 몇달 만에 처음 마셔보는 레몬차 한잔이 행복일 수도 있고 등줄기에 땀이 나도록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온몸으로 맞는 시원한 바람이 행복일 수도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특히 자신이 힘든 고난의 순간에 닥쳐 있다면 역으로 행복을 느끼기 아주 쉬운 상황에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힘든 순간을 넘기는데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진통이 힘드니까 출산 순간의 감동이 벅차고 행복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앞으로 의학 기술이 발달하여 큰 수고 없이 그저 가게에서 병아리 한마리 사오듯이 자신의 아이를 얻게 된다면  수십년간을 무한한 책임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고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때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애지중지했던 반려 동물들이 숱하게 거리로 버려지는 이유는 그들이 그저 동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출산 순간처럼 벅찬 행복감이 몇년씩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엄청난 행복감이 그 후의 무미건조한 긴 나날들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된다.
짧은 만남 긴이별이라는 말에서 방점을 만남에 둘 것인지 이별에 둘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진통 시간은 길고 벅차게 행복한 출산 순간은 짧다. 진통에 온 신경을 쓰면서 걱정하는 산모가 있는가 하면 곧 만날 아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출산 순간을 기쁘게 기다리는 산모가 있다. 그 두 부류는 출산 전 과정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아마 육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다를 것이다.
어떤  출산이든 산모와 가족에게 고통보다 행복한 순간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
누구에게서 태어나든  탄생이  아기에게 행복한 삶의 시작 순간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분만은 행복한 순간이다.

댓글

출산이 겁나면서도 기다려지는 마음..인데 원장님 글을 읽으니 행복한 설렘을 더 맘껏 누려봐야겠다는 생각이들어요. 힘들게 찾아온 아기인만큼 더 소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잠시 잊고있었어요.  등록시간 2018-10-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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