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에 산모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태아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임신 중에 중요한 것이 태아만은 아니다. 태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양수다. 미세 먼지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게 사람을 둘러싼 공기가 중요한 것처럼 태아를 둘러싼 양수도 중요하다. 양수는 태아와 태반, 탯줄이 외부의 압력과 충격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완충 작용이 있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의 경우 수시로 자세를 바꾸어 주지 않으면 압박을 받는 엉덩이나 등 부위에 욕창이 생기게 된다. 태아의 경우 양수로 보호되지 않는다면 자궁 벾에 눌리는 부분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할 것이다. 양수는 태아의 체온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은 공기보다 열전도가 좋아서 양수는 산모의 따듯한 체온을 태아에게 전달해서 태아가 항상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한다. 양수가 가진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태아의 폐와 장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수 조기 파수가 되어 양수가 부족한 경우에 태아의 폐기능이 미흡한 경우가 많다.
양수는 28주에서 34주까지 꾸준히 증가하다가 이후 서서히 감소한다. 양수의 평균양은 800cc에서 1000cc 정도다. 생각보다는 상당히 많은 양이다. 이 양수는 임신 16주 이전에는 양막을 통한 체액의 흐름에서 생기며 이후부터는 태아의 소변을 통해 만들어 지고 태아의 위를 통해 흡수되어 없어진다.
(그림은 태아를 담고 있는 양수를 연필로 끄적거려 본 것이다. 우측 위 사진은 양수가 파수 되어 흐르는 모습)
생명의 탄생과 진화 과정에는 많은 단계들이 있고 여러 학설이 있지만 생명의 최초 발생지는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이거나 아니면 바다속 열수공 근처라는 것은 대다수 학자들이 인정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물속에서 최초의 생명이 생겼다는 말이다. 그후 어류, 양서류를 거쳐 현재의 포유류로 진화했다는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이런 발달 과정을 보면 한 개체에 있어 배아로부터 태아로의 발달 과정(개체 발생이라고 한다)은 생물의 진화 과정 전체 (계통 발생이라고 한다)를 닮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에 주목하여 새로운 학설을 주장한 이가 독일의 의학자 에른스트 헤켈이다. 그는 1866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발생 초기 단계에서 아가미 구멍이나 꼬리의 흔적 같은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는 "진화재연설"을 주장했다. 진화 재연설이라면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지 모르겠다. 즉 한 생명체가 수정되어 단세포가 되고 세포 분열을 거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사람 계통으로, 소나 말은 포유류계통으로 성장하는데 이 각 계통에서 지금까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과정을 거치며 변화되어온 전 과정을 한 생명체가 수정되어 태어날 때까지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다윈의 진화론과 더불어 생물학계의 획기적 발견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자료의 조작 의심 등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헤켈의 학설은 1997년에는 생물학 분야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위조로 최종 판명되었다. 진화 재현설은 그렇게 오류 혹은 사기로 판명났지만 인간이 최초의 생명의 시작을 양수 안에서 시작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양수가 없없다면 태아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여 태아를 산모의 자궁 안이 아닌 외부의 시험관 같은 곳에서 키우게 되는 세상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런 때가 오더라도 양수의 역할을 맡는 물이 없는 곳에서 태아가 성장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자라가 물속에서 느긋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가미 호흡보다 폐호흡 쪽이 훨씬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사실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는 많지 않다.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분자의 수로 계산해 보면 대기 중의 약 3%에 불과하다. 게다가 물속에서 산소는 별로 퍼지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만 잘못해도 금방 무산소 상태가 되고 만다. 게다가 물은 무거워서 공기보다 빨아들이고 내뱉기가 훨씬 힘들다.>
위 문장은 사라시나 이사오가 쓴 "폭발적 진화"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물속에서 사는 어류가 육지로 올라와 폐호흡을 하게 된 것은 산소의 공급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진일보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태아는 비록 양수 안에서 양수를 통해 산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태아에게도 양수로부터 벗어나서 공기 중으로 나오는 것은 수정부터 사멸까지 한 인간의 전체 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 하겠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산모의 질 밖으로 빠져 나온 순간을 실질적인 인간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리고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인 의사로서 생명의 시작은 자궁 안에 착상되는 잉태의 순간으로 본다.
여하튼 양수는 태아의 발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 양막을 찢고 양수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출생도 없다. 갑자기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양수 혹은 양막은 그렇게 지켜야 할 대상인 동시에 적절한 시기가 되면 파괴해야 하는 대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