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위 문장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첫 부분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길이 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깊은 산골에도 이어질듯 끊어질 듯 좁은 오솔길이 있고 험준한 산에도 등반가들이 개척해 놓은 루트가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거의 반드시 길이 있는 이유는  사람이 움직이는 동물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혼자 동굴 속에서 지내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인 점이 클 것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하며 히키코모리처럼 방구석에 쳐박혀 있어서는 소통이란 불가능하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는  독방에 가두는 것이 가장 큰 고문이라고 들었다. 물론 이제는 직접 사람을 만나기보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땅 위로 난 길이 점점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이 진화하여 다리가 없어지고 대신 날개가 생기지 않는 한  아마 길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 근처에도 수 많은 길이 있다. 양화대교 쪽으로 빠지는 8차선의 큰 길이 있는가 하면 연인들의 단골 코스라는 경의선 숲길이 있다. 심심할 때면 내가 마실 나가는 책거리 길도 있다. 경의선 숲길은  젊은 사람들로 그득하여 주말이면 늦은 밤 시간까지 시끌벅적하고 온갖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한다. 조금 더 걸어 가면 사람들이 줄어들고 음식점도 없어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딛히지 않고 걸을만한 길이 나온다. 옆길로는 어두워서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주택가 골목도 있다.  각종 조명으로 번쩍거리는 거리를 지나 조용한 숲길 혹은 주택가 골목을 걸으면 길이 인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길은 화려하고 사람도 많고 어떤 길은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다. 어떤 길은 깨끗히 단장이 되었고 어떤 길은 지저분한  쓰레기들로 악취를 풍긴다. 걷기에 힘이 든 오르막도 있고 다리만 들었다 내리면 저절로 걸어지는 내리막길도 있다. 사람이 많은 길을 걸을 때는 빨리 벗어나고 싶어 발걸음이 총총하고 좋은 숲 공기를 맡을 수 있는 길이나 주변에 꽃이라도 있는 길은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에 혹은 돌아 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에 마냥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멈추어서 눈을 즐겁게 하거나 코를 위로할 여유는 없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들은 대체로는 평범한 길이다. 그저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 알려준  길을 따라 가면 되는 것이거나 사회가 제시한 길을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해야 하는 조금 힘든 때도 있었지만 새벽 3시 폐지 줍는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며 가는 길보다 더 힘든 길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남은 길은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 그리 평탄하고 꽃으로 덮인 길은 아닐 것이다. 택한 직업이 그리 만만한 것도 아니고 끌어 안고 있는 빚도 그리 적지는 않다. 가야 할 길의 종류도 대폭 줄었고 길이도 그리 길지만은 않을텐데 다행이라 해야 할 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얼마전 아내가 중국의 장가게라는 곳으로 여행 다녀왔다. 나만큼이나 무뚝뚝하고 애교도 없는 아내라서 여행 소감을 거의 듣지 못했고 잔도라고 하는 곳에 대한 이야기만 간단하게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의 리액션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아내가 내게 이야기 하는 걸 별로 즐겨 하지 않는 것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80자 제한을 가까스로 넘지 않은 내 문자에 대한 답도 달랑 동그라미 두개인 적도 많다. 참고로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알려드리자면 동그라미 두개는 응이라는 뜻이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여하튼 잔도는 거의 90도 가까운 절벽의 옆을 깍아 만든 길이다. 너무 무서워서  아내는 절벽의 낭떠러지 쪽은 아예 쳐다 보지도 못하고 절벽의 벽 쪽에 스파이더맨처럼 바짝 붙어서 엉금엉금 걷느라고 아니 걷는게 아니라 벽을 문지르면서 움직이느라고 온몸에 몸살이 났다고 한다. 그런 길을 만드는 잔도공도 있는데 그 길을 걷는 것조차 그리 힘들어 할 게 무엇이냐고 면박을 주었다. 더군다나 돈까지 주어 가면서 택한 여행 코스인데 벽만 보고 딱 붙어서 그 길을 지나왔다니 돈만 아깝게 되고 말았다고 말했더니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내게 항변을 한다.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돈을  내지 말고 그 코스는 빼든가 했어야지... 그러나 막상 그런 곳에 가게 되면 나도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은 못하겠다. 일부러 그렇게 돈을 주고 무섭고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도 있으니 어떤 길이든 운명이라 생각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가면 길도 좀 덜 힘들게 느껴질런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모든 길은 끝이 있다. 그런 점이 지금 힘든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위안이 될 것이고 반대로 꽃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될 것이다. 또한 모든 길의 끝에는 끝까지 가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잠시의 휴식이든 영원한 안식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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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monkey [2019-03-09 20:15]  박선주 [2019-03-06 11:19]  podragon [2019-03-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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