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기를 아주 길게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고 생생하게 써 주셨네요.^^ 내용도 솔직하고 다른 산모분들께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많고 여러가지로 좋습니다. 다만 아기를 안고 있는 제 얼굴이 저도 놀랄 정도로 무표정하게 나온 것이 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ㅠㅠ 사진 자체는 잘 나온 것 같습니다. ㅎㅎ 제 얼굴이 문제지.. 더군다나 활짝 웃고 있는 남편분 옆이라 더 대조되어 무뚝뚝하게 보이는군요. 제 딴에는 그게 웃은 건데 역시 평소 표정이 무표정하다보니 그대로 굳어져서 안되나 봅니다 때문에 별명을 지킬박사라 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물론 베토벤도 그렇고 그 별명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무뚝뚝 대마왕은 하도 들어서 익숙해져서인지 이제는 차라리 그 별명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읽고보니 보름이가 가진 뜻도 알았고 귀가 한쪽만 있는 유기견 "도비" 이야기도 뭉클하군요. 혹시 도비라는 이름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 도비에서 따온 건가요? 그리고 제 아들은 항렬을 따지는 않았지만 섭자 돌림이 맞습니다. 그런 이름 때문에 병원을 선택한 것은 글쎄 잘 하신 것이라기보다는 좀 무모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의사가 보는 출산 후기를 따로 올릴까 했는데 여쭈어 보신 것에 대한 답을 하는 것으로 그리고 제 소감을 좀 보태서 출산 후기에 가름하는 답변을 답니다. 중간에 적은 몇가지 점들--토하거나 변을 보는 것 등--은 다른 산모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특별히 언급할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글 중간에 있다시피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제가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 한 것은 솔직히 대학병원으로 전원해야 하는 경우였기 때문인데 나름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시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것이니 정확히 보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골치가 아파서라고 생각해서는 아니고 산모와 아기의 안전 때문이라는 것이죠. ^^ 사실 그 말이 그말인가요? ㅋㅋ 솔직히 고백하자면 고위험 산모도 그간의 정 때문에 과감히 보내지 못하는 저의 우유부단함은 옳은 것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다행히 저희 병원에서 순산하기는 했지만 결과가 나쁠 경우 저 스스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동안 대학병원으로 전원한 산모는 중증 임신 중독증인 산모, 중증 근무력증이 있었던 분, 쿠싱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산모, 거대 근종이 있었던 산모, 전치 태반이 있었던 산모, 34주 전의 심한 조산이었던 산모, 40세 이후의 출산 산모 등이었습니다. 심지어는 40세 이후의 산모는 첫아기를 제가 분만을 도운 산모이기조차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40세가 넘는 산모나 근종이 있는 산모도 산전 진료를 계속 받고 계시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개인 병원은 50세가 넘은 산모의 출산을 해 내었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전치 태반 산모도 자신의 병원에서 수술한다고 자랑하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그런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며 매우 무모한 일입니다. 산모와 아기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했을 때 개인 병원에서 분만을 시도해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경우들입니다. 심상O님도 고위험군에 속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사실 대학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안전성 측면에서 더 낫기 때문에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라도 전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시로 갈등을 했고 실제 그런 시도도 했었지요. 비록 제 시도가 실패하기는 했지만.... 일부러 찾아서 온 분을 대학병원으로 가서 출산하시도록 권하면 제가 아무리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조리있게 말씀드려도 화를 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제 얼굴 표정도 그렇고 말하는 스타일도 그렇고 그리 살갑지 못하다 보니 더 그렇게 만들게 되는 듯 싶습니다. 조산기도 있고하여 전원을 하도록 권고드린 것이 말하자면 제가 한 마지막 전원 시도였는데 실패하고 나서 사실 내심 매우 걱정이 컸습니다. 저야 한 분이라도 저희 병원에서 출산하면 감사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산모와 아기가 안전하게 출산하는 것이 산부인과 의사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그런 안전성이라는 점에서 저희 병원의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상황인 분들께는 의사의 양심으로 진실을 말합니다. 아마도 말씀드렸겠지만 그리고 특히 중간에 병원을 옮겨 오시는 산모들께도 종종 말씀드리지만 저희 병원과 같은 개인 병원은 3가지가 없고 3가지가 있습니다. 없는 3가지는 마취과 선생님, 소아과 선생님, 혈액은행입니다. 따라서 신속한 수술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은 산모, 소아과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은 산모, 출혈의 위험이 높은 산모의 경우에는 대학병원에서의 산전관리와 출산을 고려하시도록 조언드립니다. 가지고 있는 3가지는 대학병원에 비하여 비교적 저렴한 진찰 비용 및 입원 비용, 접근의 용이성, 그리고 산모의 의견을 반영하는데 있어서 좀더 수월하다는 점 정도이겠지요. 그러나 가지고 있는 3가지 점은 가지고 있지 못한 3가지에 비하면 사실 비교의 대상도 되기 어려운 작은 것들입니다. 다만 알고 계시는 대로 출산이라는 것이 병이 아니고 산모가 충실히 산전 관리를 받고 순산 체조도 잘 하고 특별히 고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 건강한 순산을 한다는 점 때문에 저희와 같은 개인 병원에서도 분만을 돕는 일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지금까지 산부인과 의사 생활의 거의 대부분인 20여년을 출산 현장을 지키는 분만 의사로 살면서 의료 사고의 경험도 있고 또한 몇번의 의료 분쟁도 겪었지만 극히 소수의 경우를 빼고는 무엇이건 간에 대부분 고위험 요인을 한두가지 가지고 있는 산모들이었습니다. 이전 글에도 답글로 달았지만 심상O님은 사실 자연분만이 될 가능성은 10% 전후로 예상할 정도로 높지 않았는데 순산할 수 있었던 것은 산모의 의지와 그리고 진통 후반에 오신 둘라의 도움도 적지 않았을 듯 싶습니다. 물론 곁에서 끊임없이 격려하고 함께 노력한 바깥분의 역할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제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에서 말씀드리면 분명 쉽지 않은 출산이었다고 기억하지만 흡입 분만을 하는 경우라는 점이나 진통 중에 수술을 해 달라고 하는 분들의 경우는 생각처럼 적지는 않아서 그다지 기억에 남겨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행이죠? ㅎㅎ 다만 10cm가 벌어져야 힘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자궁 경부가 3~4cm 밖에 벌어지지 않았는데 수술을 해 달라고 하셔서 눈앞이 깜깜해 지고 걱정이 좀 많이 되기는 했습니다. 그렇게 설득해서 자연분만을 하면 다행이지만 결국 수술하게 되면 고생은 고생대로 했으니 돌팔이 의사로 평가되어 아마도 평생을 두고 원망을 들을 것이 뻔하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경우에 속하기도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자연분만을 해 주시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하튼 어제 출산한 분까지 진오비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나서 총 100분이 출산하셨는데 그 중 단 4분만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을 했습니다. 그 중 3분은 반복 제왕절개나 역아인 경우로 원칙적으로 거의 모든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해야 하는 경우인 점을 감안한다면 단 한분만이 예상에서 벗어나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제가 순산을 돕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거나 또는 비방의 약을 가지고 있어서거나 아니면 유독 삼신 할미가 저희 병원을 도왔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여러가지 운이 따라 준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분을 포함하여 산모와 가족들께서 저희를 믿어 주시고 끝까지 순산을 위해 스스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저희도 그런 신뢰를 밑바탕으로 나름대로 원칙적 진료하려고 애썼던 점도 약간은 영향을 끼쳤다고 자부하고는 있습니다. 중간에 아기 심음이 떨어지고 아기가 골반에 걸려 나오지 않아 흡입기를 쓸 수 밖에 없었고 회음부 파열도 적지는 않았지만 저는 산모와 아기가 그렇게라도 건강하게 출산하게 되어서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귀여운 아기의 행복한 웃음에 그런 것들은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질 뿐 아니라 사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저는 자연주의 출산법에서 주장하는 회음부 절개니 삭모니 관장이니 하는 것은 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이 하등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출산 철학에서 한가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저도 인정하는 것은 "출산은 산모가 주체"라는 점입니다. 분만 의사는 조언자이자 격려자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여행을 떠나는 데 있어 가이드와 같은 것이죠. 대부분이 이전에 한번도 직접 가보지 못하고 말로만 들은 여행지로 떠나는 그런 여행말입니다. 중간에 위험한 순간도 있을 수 있고 갔다오고 나면 멋진 추억으로 남는 여행. 그렇게 산모는 여행을 떠나는 주체입니다. 그러나 대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실제 여행을 떠날 때도 그렇게 하지만 여행자는 주체로서 상당한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의사가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며 해 줄 수도 없습니다. 여하튼 멋진 여행을 무사히 끝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물로 이쁜 아기도 얻으시게 되어서 축하드립니다. 비록 중간에 갈등과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평생에 절대 잊지 못할 여행을 저희 병원에서 해 주시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제 아기와 더불어 명실 상부하게 진정으로 가정이 되었군요.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도비도 함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