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웃는 자화상
작가: 리하르트 게르스틀
소장: 오스트리아 미술관

리하르트 게르스틀은 오스트리아의 고흐라고 불리는 화가다.  고흐의 이름을 안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리하르트 게르스틀이라는 화가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나조차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화가였을 정도다. 우리가 화가에 대하여 알게 되는 주 통로는 학창 시절의 미술책인데  그는 우리나라의 어떤 미술 교과서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그의  자화상이다. 그의 자화상은 세밀한 묘사를 하지는 않은 채 거친 필체로 그려졌다.  원래 그의 필체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화상을 그리게 된 당시의 상황이 차분하게 세밀한 묘사를 하기 어려운 사정 이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아주 빠른 시간 내에 흥분 상태에서 그린 것처럼 붓터치가 굵다. 오스트리아의 고흐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붓터치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흐와 닮은 점은 그 외에도 여럿 있지만..… 뭉개진 것 같은 얼굴 표정 속에서도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눈과 입의 모습이 상호 다른 감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입은 벌린 채 환하게 웃는 얼굴이지만 눈에는 곧 쏟아질 것처럼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웃는 입과 우는 눈.
한 사람의 태도 사이에 , 또는 태도와 행동 사이에 서로 일관되지 않는 것을  인지부조화라고 하는데 표정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으니 인상 부조화라고 해야 할까?  
수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남겼지만 대부분은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서 그린 자화상이며 웃거나 울거나 하는 등의 희로애락의 표정을 강렬하게 담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자화상은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이다. 리하르트 게르스틀은 음악을 좋아해서 화가 친구들보다 음악가들과 종종 어울렸다.  그러던 1908년 무렵 그는 친하게 지내던 작곡가 쇤베르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데는 그보다 6살 연상이었지만 둘은 사랑에 빠져 빈으로 도피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불과 두어 달의 짧고 꿈같은 시간이 지난가을에 마틸데는 남편 곁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실연의 상처를 이겨 내지 못한 게르스틀은 겨울이 깊어가는 11월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웃는 자화상’은 그가 죽기 얼마 전인 25세의 나이에 그린 그림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이 심리통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심리통이란 영어로 psycheache라고 하는데 psyche는 마음이라는 뜻이며  사이코패스라고 할 때의  사이코와 같은 단어다.  ache는 통증을 뜻하는 접미사로 두통은 headache라고 부른다.  이런 심리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약물 치료도 있고 정신과 상담도 있다. 그러나 그런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겨내지 못했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수단의 하나가 자살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전에 내가 알고 어떤 직원은  손목에 칼로 그은 흉터가  여럿 있었다.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흔적들이라고  직접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  20대 중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십여 년 정도로 길지 않은 생이지만  여러 마디의 설명도 필요 없이 그녀가 살았을 삶의 고단함이 느껴져서 가슴이 조금 아렸던 기억이 난다.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게  성공이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니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했다는 것은 다시금 살아볼 기회를 얻는 것이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수련하던 시절 타 진료 과목의  전공의 1명이 자살한 사례가 있었다. 출산 후 생긴 회음부 누공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인공 항문까지 하게 되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들었다. 회음부 누공이란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길 수 있는데  출산하는 과정에서 항문이나 직장이 파열된 후 생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항문 파열의 경우 일차 봉합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인공 항문을  수개월간 누공의 염증을 치료한 후 재 봉합하는 것을 택해야 한다. 말이 인공 항문이지 젊은 여성이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껏 내가 출산을 도운 산모들 중에도 항문 파열로 누공이 생긴 분들이 서너 분 있다.  일부는 일차 봉합으로 회복되었고 일부는 회복되기까지 상당히 고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분만 시 회음부 파열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특히 정중 절개를 하거나 아예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는 경우에 간혹 생긴다. 측면 절개를 하는 경우에는 거의 생기지 않는데 내 경험으로 봐도 그랬다. 내가 경험한 서너 건의 항문 파열은 자연주의 출산 붐으로 수년간 정중 절개만 주로 하거나 아예 절개를 하지 않던 시절에만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정중 절개는 잘하지 않는 편이며 아주 넉넉한 회음이 아니면 예방적 측면 절개를 많이 하는 편이다. 드물게 생긴다하더라도 항문 파열로 인해서 올 수 있는 누공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회음부 누공이 되었든 혹은 산후 우울증이 되었든 혹은 육아로 인한 고단함이 되었든 여성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출산과 육아의 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요즘이야 남편들이 나누어서 같이 육아도 돕는다고 들었지만 내 생각에 남편으로서 그렇게 덜어 줄 수 있는 짐이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육아는 그렇다고 해도 임신과 출산 시 어려움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덜어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적다.
우리나라의 사례는 아니지만 이웃인 일본의 통계를 보면 임산부의 자살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국립 생육 의료연구센터가  2015∼2016년까지 각 지방 자치 단체의 자료를 분석하여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지  1년 미만 기간에 사망한 임산부 총 357명 중 자살이 가장 많은 102명(임부 3, 산부 99명)을 차지하였고 한다. 이는 전체의 28.6%로  암이나 (75명), 심장 질환(28명) 보다도 많은 수치다. 출산과 관련된 출혈로 인한 사망(23명)이나  양수 색전증으로 인한 사망 (13명)도 적지는 않지만 자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이렇게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 자살률이 높은 것은 특히 무직 여성의 경우 높았다고 하며  산후 우울증이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도 비슷한 수치를 보여준다.  캐서린 골드 미국 미시간대 의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임신부 사망의 10%가 자살이며 이는 임산부 사망 원인 중 가장 많은 원인이라고 한다. 물론 그 이유 역시 산후 우울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산부의 사망 시 임신 출산과 관련 있는 직접 사인에 대한 통계는 있지만 그 외 사회 경제적 원인을 포함한 사인 분석  통계는 따로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미국과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침대에 걸쳐 앉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온 약품들을 가만히 꺼내 보았다.
수산화칼륨.
주사기.
알코올 솜.
고무줄.
800 만 가지의 죽는 방법이라는 누군가의 소설도 있지만 죽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약물을 투입하여 사망케 하는 것이 아마도 죽는 사람이 가장 덜 고통스럽고 뒤처리도 깨끗한 것일 거라서 의사들 중에는 그런 방법의 자살법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투신하여 엉망으로 부서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은 설사 모른다 하더라도 남아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니겠는가.
수산화칼륨은 근육 수축에 관여하는 약물이라서 많은 양이 일시에 주입되면 심장 마비를 초래하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사이 없이 순간에 죽음에 이르게 할 수가 있다. 물론 정말 고통을 느끼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살아서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알 도리는 없다. 그런 점에서 역시 독약인 청산 가리의 맛이 단지 쓴지도 아직 아는 사람이 없다.
병원에서 가져온 약품들을 바라보면서 의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이 죽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생각하니 잠시 실소가 났다."

위 글은 오래전 산부인과 의사들만 보는 사이트에 내가 연재로 써서 올린 졸작 소설 "마지막 선물" 중 일부분이다. 남자 주인공이  자살하기 위해 해남 땅끝 마을에 들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이 산부인과 의사이다 보니 혹시 실제로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 아닐까 해서 의사회의 홈페이지 운영자가 소설의 작자를 찾는다고 한바탕 소란을 떨었다고 들었다. 물론 전에 내가 들었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꾸며낸 소설일 뿐  현실에서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시 소설을 쓰던 때는 내가 대한 산부인과 개원의사회에서 학술이사로 활동하던 때였다. 공중 보건 전문의로 지방에 근무하던 때 주변 의사분한테 들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물론 모티브만 얻었을 뿐 대부분의 내용은 전적으로 내가 꾸며낸 이야기이다. 내 생활신조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니  실제가 아닌 소설을 쓰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소설가가 아닌 의사의 길을 택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당시 자살을 시도하는 어느 의사의 이야기를 쓴 것은 내가 딱히 죽음이나 자살에 관심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우리는 자살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는 책이나 몇몇의 자살 관련 서적을 읽어 본 적은 있지만  나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다. 그저 우울증이나 사회 경제적 어려움 등이 자살을 택하게 되는 이유 중 다수를 차지한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은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지만 죽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무언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비하면 행복한 상황이다. 사람이 가장 절망감에 휩싸이는 순간은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는 순간이다.
몇 년 전에  오히라 미쓰요라는 일본 여성이 쓴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을 읽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하고 비행 청소년으로 지내다  고급 술집의 호스티스로 전락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험난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여  나중에는 변호사로 성공하였다. 그런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낸 것이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그 책이다.  그녀는 같은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힘든 세상을 살면서 자신처럼 힘들어할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썼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이렇게 처절한 지경까지 떠밀려 내려온 자신도 살아 남아 꿋꿋이 삶을 개척하고 있으니 독자인 당신도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제목에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처한 상황들은 그녀가 처했던 상황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앞둔 가족에게 서로의 힘이 되어 주도록 강력히 조언하고 싶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그렇게 조언하고 싶다. 그 모두는 시간이 지나면 다 보람이 되고 추억이 되는 일이니 잘 견디어 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당신도 살아"라고 말할 정도로 임신과 출산을 두려운 것으로 여기게 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나는 "그러므로 당신도 이겨내라" 고는 말해 주고 싶다. 그것이 고통이든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은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듯 혼자인 여성에서 둘인 어머니로 탄생하는 과정에 필요한  영양소이고 햇빛이고 공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사실 그 말은  출산을 앞둔 산모들,  출산을 마치고 육아로 힘든 신후 맘들, 속 썩이는 미운 5살을 키우는 엄마들 뿐 아니라  나의 딸과 누이동생과 아내와 어머니와 더불어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사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살아라는 말이나 이겨내라는 말보다 그러므로 앞에 빠진 말일지도 모르겠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듯 화려한 모습이 아니어도, 내세울 것 없이 구차한 모습으로든 살아 남게 되더라도, 지나고 보면  그러기를 잘했다고 느끼게 될 거야. 그러므로 당신도 힘을 내서 이겨 내기를 바래.


[토막 정보]
임부와 산부
임부는 임신 중인 여성을 의미하고  산부는 출산하여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의 여성을 의미한다.  임부와 산부를 합쳐서 임산부라고도 하는 임부를 뜻하는 임신부와 용어가 비슷하여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살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임상 심리전문가인 임민경 님이 쓰신 책
2020년 3월에 출간하였으며 1장,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2장. 자살에 이르게 하는 마음의 질병들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
이번 글부터는 그림을 넣지 않았습니다. 향후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림을 직접 찾아 보면서 해당 화가의 다른 작품도 함께 접해 보면 좋겠다 싶어서 입니다. 대신 그림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제 감상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다른 글의 그림도 차후 삭제할 계획입니다.-->나중에 한번에 정리하기로 하고 일단 그림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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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phne [2020-10-15 05:05]  혜영 [2020-10-08 21:35]  송수연 [2020-10-08 09:52]  griets [2020-10-05 03:38]  
#2 griets 등록시간 2020-10-05 03:40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출산이 임박해서인지 글 한줄한줄이 가볍게 읽히지가 않네요 ㅠ ㅠ 그러므로...저도 잘 이겨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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