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지막 선물"을 쓰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이 글도 그때 그때 기분 내킬 때마다 쓰게 될 것이라 마무리가 될지 아니면 쓰다 갑자기 중단하게 될지 아니면 아예 이 글이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릅니다.
가능하면 지우는 일은 없을 것이겠지만.....
저는 부끄러웠다고 하여 혹은 상처를 받았다고 하여 글을 함부로 지우지는 않는 편입니다.
글이야 지우면 없어지겠지만 대신 지우고 싶지 않은 다른 것도 많이 지워지니까요.
졸작 "마지막 선물" 도 이곳에야 한번에 올렸지만 그 글을 쓰던 당시에는 결말을 정하지 않고 며칠마다 한편씩 써서 올리는 식으로 했었습니다.
유명 드라마 작가가 쓰는 쪽대본 같은 방식으로 쓴다는 것인데 재미있게 글을 쓰는 유명 작가도 아닌 저의 처지에서는 오만하기 짝은 없는 행동이죠.
여하튼 그렇기 때문에 제 감정의 굴곡과 시간의 여유 정도에 따라 마지막까지 쓰게 될지 쓰다 말지 알 수 없다는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써야 하는 말이지만 끝까지 쓰게 될지 알 수 없어 쓰게 된 동기를 말씀을 드려 두자면 이미 지난 일을 다시금 되집어 쓰는 것은 그때의 일을 이제 정말 마음 속에서 정리하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 살게 되면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때 교훈으로 삼아두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또 발생할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 제 이 에피소드는 당시 서대문구에서는 파다하게 소문이 나서 제 주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글을 보시는 분 중에도 혹시 들으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그때의 일을 전후 사정과 제 감정의 흐름을 밝혀가면서 쓰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한 10년 전 쯤 되는 것 같군요.
그때도 지금처럼 주인인 봄은 쫓겨나고 아직 올 때도 되지 않은 여름이 성급히 자리를 탐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그때의 세세한 전후 관계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며 어쩌면 어떤 분 말씀대로 기억의 재구성도 있을지 모릅니다.
또한 당시에는 죽을 때까지 없어질 것 같지 않았던 감정도 시간이라는 준엄한 청소부에 의해 싹 쓸려져 나가고 지금은 흔적조차 거의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전 서대문구에서 봄산부인과를 설립하여 대학교 후배인 남자 원장과 동업으로 운영하고 있을 때입니다.
나이가 지금보다 젊었던만큼 꿈도 많았고 의욕도 지금보다는 훨씬 넘쳐나든 시기였지만 무뚝뚝한 점은 아마 지금보다 조금 더 심했을 겁니다.
산부인과는 업무의 강도가 높고 보수가 낮아서 지금도 그렇지만 직원의 이직이 상당히 잦은 편이었고 그 무렵에도 외래 근무자 한명이 결원이라 새로 직원을 구하던 참에 신참 직원을 한명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밝히기는 어려우니 그냥 M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와 관련된 어떤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니 이글을 보시는 분들은 아마 두가지가 가장 궁금할 듯 싶습니다.
첫째는 얼음같은 무뚝뚝대마왕을 녹인 여자이니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렇다면 결국 어디까지 갔나 하는 것일 겁니다.
그 중 우선 외모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얼굴은 유난히 희었고 염색을 해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안 했겠지요. 얼마전 젊은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까만 색으로 염색을 하지는 않는 편이라 하더군요.) 유난히 까맣고 긴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갸냘픈 체구였고 그렇다고 몸매가 좋다고 하기는 어려웠는데 그러니까 그냥 좀 마른 체형이었습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가 까만 색과 하얀색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다시피 제 취향에 상당히 가까운 외모의 직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모에 대한 평가는 개인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니 뭐라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지금 저희 병원에서 가장 이쁘다는 배유진 초음파 실장의 두배 정도 이쁜 얼굴이라고 생각하면 혹시 감이 오실지 모르겠군요.
새로 채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한 시점들은 기억 나지 않는데 한 2주나 3주 정도 지나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마침 동업 원장이 보던 외래 직원도 결원이 생겨 한명의 직원을 더 뽑게 되어 총 세 진료실 중 두 진료실의 보조를 담당할 직원이 부족하게 되었으니 결국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새로운 직원이 두명이 오게 된 꼴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그다지 드물지 않은 일이었고 지금도 종종 있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심지어 어떤 병원은 어느날은 직원이 몽땅 한꺼번에 사직을 해서 원장이 셔터 문 열고 들어가기도 한 황당한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병원의 규모가 총 5층에 전 직원이 30명도 훨씬 넘어서 그런 일이야 없었지만.
새로온 직원이 근무한지 얼마 안되어 어느 날인가 제가 두 직원을 불러 놓고 이제 두 사람이 각각 두 진료실을 맡아서 도와 주어야 하니 원하는 진료실이 있으면 말하면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서두에 미리 "나는 성격이 불같이 급하고 버럭 스타일이며 업무에 있어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아마도 상당히 괴로울 것이니 그 점 미리 알고 말해라. 지원자가 있으면 원하는대로 해 줄 것이고 아니면 내가 무작위로 정하겠다"고 했었죠.
지금도 각 진료실별로 원장의 스타일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대체로는 한명이 고정적으로 진료실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때도 그랬습니다.
조금 나중에 온 얼굴이 귀엽고 통통하게 생긴 직원은 수줍음이 많아서인지 쭈뼜거리고 있었는데 M은 먼저 손을 번쩍 들고 자기가 제 진료실을 도우면 안되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혼나지 않고 잘할 자신있냐고 하니 그렇다고 대답을 해서 좀 의외였습니다.
저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제가 첫인상도 그렇고 끝인상도 그렇고 그리 만만한 스타일이 아닌데다가 원장이 그렇게 물어본다고 대뜸 손을 드는 것도 그렇고 상당히 맹랑한 직원이구나 생각하면서 일단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팀이 되어 외래의 여러 업무를 해 나갔는데 일은 나름 깔끔하고 성실하게 잘 해서 본인의 말대로 그리 혼나지 않고 잘 해낸 편입니다.
병원에는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고 궂은 일은 도맡아 해서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직원들을 만나 보았지만 다들 자기 업무 끝나기 무섭게 가기 바쁘고 병원은 그야말로 월급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곳이라는 모습이 눈에 역력하게 보이는 직원이 태반인 상황이었으니 좀 의외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직원 채용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니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혹 제 편견(이쁜 사람은 그저 좋게 보이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런 성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만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직원은 병원의 다른 선배 직원들로부터도 귀여움을 받았고 중간중간 병원에 나와 일을 돕던 아내도 칭찬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에서 다시 생각난 것이지만 어느날인가 제가 직원 뽑는 것이 어렵다고 하니 원장님이 쫓아 내지만 않으면 자기는 원장님 계실때까지 끝까지 남아서 돕겠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20여년 개업의 생활 중에 직원으로 와서 일한 사람이 아마 백명은 훌쩍 넘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그렇게 말한 직원이 딱 두명 있었는데 그 중에 한명이기도 합니다.
결국 일한 총 기간이 1년도 안되어 그만 두게 되서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그 직원이 병원에 들어 오고 나서 한달인가 두달 쯤 뒤인가 전체 직원 회식을 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날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잊혀지지 않는 날들이 있을텐데 그 날이 제게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겉으로 대단한 일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노망이 나서 삼풍 백화점 사고도 잊고 성수대교 무너진 날도 잊고 요즘의 세월호 사고도 잊더라도 아마 부모님과 관련된 몇날과 그날 만큼은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객관적 사실만 나열하자고 마음 먹고 글을 쓰는데 쓰면서 자꾸 감정이 섞여 들어가고 잡 설명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아직 그때의 감정의 찌거기까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닌가 봅니다.
1차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몇명은 가고 6명 내지 7명이 남아 간단하게 2차를 맥주집에서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제 종아리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났습니다.
뭔가 싶어 테이블 밑을 슬쩍 내려다 보았더니 M이 자기 발을 제 바지 안으로 집어 넣어 종아리를 장난치듯 간지르고 있더군요.
흔히 3류 멜로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장면이었는데 저는 순간 못 본 척하고 M의 얼굴을 봤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소곳이 앉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 전 이게 뭔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수로 발이 닿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분명하게 종아리를 간지르고 있었는데 주변이 비교적 어두워 다른 사람들은 미처 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하지 못하고 그냥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멍하게 있었는데 저도 그때 왜 가만히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처음 겪는 일이기도 하여 당황해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굳이 뭘 기대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몰래 어깨 너머로 형들이 보는 빨간책의 표지를 슬쩍 봤을 때의 뭔가 야릇한 기분 혹은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요, 아니면 부드러운 강아지풀로 귀를 간지를때처럼 가슴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여하튼 처음 겪어 보는 미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내와도 1년 반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 미묘한 느낌을 받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아내와는 친구의 소개로 심플하게 만나 별 굴곡 없이 서로 좋아했고 번거롭게 밤 늦게 바래다 주고 하는 것도 피곤하고, 따로 지내느니 결혼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한 것이었으니까요. 뭐 그게 다는 아니지만. ^^
물론 결혼의 구체적 촉발제가 된 일은 언젠가 글에 쓰기도 하였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내가 아니니 그 부분은 여기서 따로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여하튼 지금도 그때 M이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행동을 이무렇지도 않게 할만큼 닳고 닳거나 혹은 끼가 많은 친구는 아니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제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제가 그런 것에 쑥맥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모르진 않으니까요.
M은 오히려 순박한 쪽에 가까웠던 친구이고 그리고 근무한 지 한두달 밖에 안된 직원이 아무리 끼가 많다한들 그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M이 제게 남자로서 무슨 사감이 있어 꼬시려고 해서도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제 추측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와서 추측해 볼 적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좀 짓궂은 장난 정도인데 그러나 그것도 그리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근무 기간이 오래된 선배 직원 중 누구도 제게 농담이나 장난을 걸만큼 제가 유머도 있고 곁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지금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지만.
그때 그 일은 좀 당황스럽고 이상 야릇한 기분을 느꼈지만 별 지적도 없이 왜 그랬냐고 묻지도 못하고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다만 M을 좀 유심히 살펴 보게 된 계기가 되기는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보니 이후 회식 때도 그렇고 그외 병원 업무 중에도 그렇고 은근히 제 곁을 맴도는 느낌을 주는 행동들을 자주 하였습니다.
회식 때면 어떤 구실로든 항상 제 옆에 앉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일을 빌미로 제 진료실에도 자주 들어오곤 했습니다.
커피도 시원하게 얼음 동동 띄워서 타오곤 했는데,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커피 맛이요? 상당히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마침 오늘도 외래 문혜민 직원이 산 시원한 스타벅스 카페라떼 마시고 있습니다. ㅎㅎ.
영상 카페에 올리는 병원 촬영영상 올리기 이벤트에서 1등을 한 선물로 원하는 것을 물었더니 커피를 사면 좋겠다고 하여 전체 직원에게 커피를 돌리게 되서 먹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런 배려가 사단의 빌미는 아니었겠지만 이후 지금까지 저는 직원에게 제게는 일체 커피를 타오지 말라고 엄히 지시해 두고 있습니다.
한번인가 두번 쯤 그런 지시를 어긴 직원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M처럼 밥먹듯 어긴 사람은 없었죠. ㅎㅎ
그러나 그때 M의 행동은 어쩌면 제겐 기분 좋은 어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싫었다면 화를 냈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마 다시는 커피를 타오지 않았겠지요.
물론 제가 시키는 일이라면 다른 원장의 지시나 일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하고는 했습니다.
성실한 직원이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쑥맥인 제 눈에도 뜨일 정도로 조금 티가 나게 했습니다.
여하튼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보면 제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아마 뭔가 단단히 씌였나 봅니다. ㅋㅋ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대응하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제가 잘못 대응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저는 그런 배려와 관심 끌기를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이쁘고 젊은 직원이 저만 티날 정도로 챙겨 주는데 비단 원장이라 해도 남자인 제가 싫을 이유는 없겠지요.
그것이 원장에 대한 존경의 마음 때문이든 여고생들이 학교 선생님에게 가진 한때의 풋풋한 감정처럼 원장에게 이쁨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든 말입니다.
아마 M도 후자의 감정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보니 좀 심한 정도로 그것을 표현한 것 뿐이었겠지요.
어쩌면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일하게 된 얼굴 통통한 직원과 은근한 경쟁심도 발동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경쟁심으로 인한 일종의 관심 끌기는 그 이후 다른 직원들에게서도 종종 경험했습니다.
제 착각인지도 모르겠습니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은어로 썸이라고 하던가요?
그렇게 여제자와 남선생의 썸과 같은 그런 진부한 주제의 연장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다만 그 남자 선생님이 유부남이고 여학생이 가진 것 이상으로 그 여학생에게 상당한 정도의 호감을 가지게 된다면 이야기가 좀 골치 아파지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겠지요. ㅎㅎ.
그러니까 종국에는 종종 신문에도 나오고 3류 소설에도 흔히 등장하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뭐 저야 다행히 신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주변 사람들의 입에는 한참 오르내렸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거기다가 M은 특별히 그런 표현과 관심 끌기가 더 절박했을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M은 동생 한명과 서울에서 둘이 지내면서 생활고로 상당히 힘들게 삶을 꾸려 갔다고 하더군요.
그런 이유로 해서 위와 같은 방식을 택하는 것이 세상을 사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깨우쳤을 겁니다.
그리고 온지 두어달 지났을 무렵에 안 사실인데 M은 홍반성 낭창이라고 하는 난치병도 앓고 있어 매일 약을 먹고 있더군요.
그래서 아마 얼굴이 하얗고 발그레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홍반성 낭창이라는 병은 자가 면역 질환 중에 하나로 콩팥이나 심장 등 자기 몸의 조직에 대하여 공격성을 가진 항체가 몸에 생기는 병으로 현재까지는 완치법이 없는 질환입니다.
그래서 잘 관리하지 않으면 후유증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 질환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일도 열심히 하고 저에 대하여 잘 챙겨주니까 저도 고마운 마음에 병원 업무도 잘 알려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조금은 사이가 가까운 원장과 직원의 관계에서 언제 M에 대한 사적 감정이 제 마음 속에 품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가랑비에 옷 젖듯,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썪듯, 혹은 사막의 모래 언덕의 실루엣이 어느 사이엔가 바뀌듯, 제 마음도 어느 사이엔가 그런 감정의 상태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니 어디서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 다시 돌려 볼 수도 없고, 그저 삶은 0과 1의 디지탈이 아니고 중간을 딱 자를 수도 없는 아날로그 같은 것이니 시간의 연속선 속에서 스르르 그렇게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이 오고 나서 서너달 쯤 지났을 때는 이상하게 신경도 쓰이고 옆에 없으면 보고 싶기도 하고 다른 진료실에라도 들어가면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빠진 겁니다.
자신의 힘으로 감정을 콘트롤하기 어려운 늪. 베토벤이 빠지고 고흐가 빠진 늪. 아니 그런 사람이 아니라도 인류가 생겨난 시초, 역사의 오래전부터 이름 없는 필부 필부들조차 거의 예외없이 빠졌던 그 늪에 말입니다.
반면에 M이 그 무렵 저에 대하여 가진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움은 아니었을 것이고 존경과 연정의 그 중간 어디 쯤이겠지요.
구체적으로는 약간의 존경심과 호감에 더해 위에 말한 대로 원장에게 이쁨과 귀여움을 받아 병원 생활 잘 하고 싶은 마음, 동료에 대한 경쟁심 그런 것들의 복합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이유를 모르겠는 찐한 장난을 조금 치기는 했지만.
그러다가 어느날 제가 내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아는 순간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살면서 한번도 내 감정을 내 뜻대로 못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며 감정은 사치이거나 이성을 희롱하는 쓸데 없는 것이며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은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다라고 하는 것이 그때까지의 제 철학일 정도로 철저한 이성주의자였으니까요.
물론 원장으로 일하면서 수시로 화가 나서 버럭 고함도 치지만 정말 그것을 조절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기 보다 그런 정도의 화냄과 고함으로라도 잘못한 것을 고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감정의 조절에 실패하여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해 둡니다.
그래서 아내와 연애할 때도 그런 감정의 혼란에 빠진 적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전 금욕주의자에 좀 가까웠고 결벽증도 있어서 그전까지 아내 이외 어떤 여자와도 살가운 대화를 나누거나 손을 잡은 적도 없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쌓게 되면 한달에 한번 회식을 가고 회식 자리 후에는 의례 룸살롱을 가게 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룸살롱 후에는 젊은 아가씨와 호텔 등으로 2차를 가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자리가 굉장히 싫었습니다.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혹은 나이트클럽에서 노래하면서 아가씨를 끌어 안고 끈적거리는 춤을 추는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옆에 앉아 술을 따르면서 손을 잡거나 몸을 맞대고 있는 것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술집 아가씨들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술집 아가씨든 요조숙녀든 제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물론 아가씨들의 달콤한 살내음이나 애교가 싫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급 룸살롱에는 어쩌면 남자로서 푹 빠지고도 남을만큼 이쁜 아가씨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그런 말이 유행을 했었지요. 똑똑한 놈들은 다 감옥에 있고 이쁜 년들은 다 술집에 있다고요.
수련시 병원의 간호사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도 예의상 간호사들과 블루스도 함께 춰 주어야 한다고 선배들로부터 강요 받을 때조차 전 묵묵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병원 근무하는 동안 그런 회식 자리에서 저처럼 아가씨들과 2차를 가지 않은 사람은 제 기억에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저처럼 굴면 선배들로부터 미움 받기 싶상입니다.
룸살롱에 가도 아가씨와 춤도 추지 않고 2차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화장실로 숨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아내 외의 어떤 여자도 안아 본 적이 없고 사적 감정을 품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 동아리 활동때 미술반 간호과 2학년 선배에게 가졌던 것처럼 그저 약간의 분홍빛 감정 조금? 그 정도가 다입니다.
철저한 스토아 학파의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새벽 3시에라도 횡단보도가 빨간 불이면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뒤에서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가지 않았습니다.
아주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로, 그리고 100%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도덕 교과서처럼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제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일이 생긴 겁니다.
그것도 40대 초반의 원장과 20대 초반으로 20년 연하의 직원이라......
제가 그동안 가져온 철학과 행실에 비추어 볼 때 제가 그런 감정 상태에 빠졌다는 것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 상태로만 조용히 머물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아내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혹시 덜 힘들었을까요?
과거에 만일이란 없다고 하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 문제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참 못난 원장이구나, 아니 나쁜 원장이구나 하여 실망하실 듯 싶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비록 아내에게는 미안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애썼고 어쩔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변명해 봅니다.
부끄럽고 깊숙한 곳에 오래 묵었던 기억이라 비록 감정은 거의 바랬다해도 억지로 끄집어 올리니 조금 피곤하군요.
이후의 이야기는 이어질지 이어진다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아니면 영원이라는 시간 다음이 될지 모릅니다.
To be continued. or The End.
인간은 종종 두 갈래 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선택에 따라 비슷한 길이 펼쳐지기도 하고 또는 전혀 다른 길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10년전 그때의 제 선택(무엇이었을까요? ㅎㅎ)에 의해 지금 이 길을 걷고 있지만 오늘 이 이야기도 앞으로 제게 어떤 길을 보여주게 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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