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근절 운동으로 국회다 언론사다 혹은 간담회다 쫓아다니느라 병원에 충실하기 어려웠던데다가 그 무렵 건강에도 큰 문제가 생겨 십수년간 해오던 분만을 접었던 것이 2년전 일입니다.

그렇게 근 2년 동안 분만을 접었다가 얼마전 다시 분만을 시작했습니다.

분만을 다시 하기로 결정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십년전에는 마라톤 풀코스도 완주하기는 했지만 그간 건강과 체력관리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서 과연 현재의 내 체력이 그 고된 분만 의사로서의 생활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한동안 분만을 접었는데 감이 떨어져 의료 사고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규모도 크지 않은 소규모 개인 의원인데다  출산율도 계속 밑바닥인데 분만을 다시 해도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더 산모들께서 찾아와 줄까?

부모님도 나이가 드셨는데 분만 의사로 메여있게 되면 함께 여행을 가는 등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울텐데 너무 죄송한 것은 아닐까?

등등 숱한 고민이 있었지만 몇가지 이유 때문에 분만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물론 외래 진료만으로는 병원의 유지도 어렵고 생활도 안되어서 분만을 다시 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이 있고 둘째는 원칙을 지키고 낙태도 하지 않으면서도 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모범을 동료와 후배 의사들에게 보여 주어서 원칙적 진료가 좀더 널리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또한 산모들께는 의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철저히 원칙과 양심에만 바탕을 둔 제대로 된 산부인과 의사의 모습을 보여 주어 일반인들이 의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전반적 불신과 악감정을 더는데 일조도 하고 싶었습니다.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하다가 어떤 모습으로 죽기를 바라는지 또 죽기전에 꼭 하고 싶은 한가지를 들라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힘든 난산을 아무 탈없이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서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출산을 하고 당직실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숙면을 취하다가 과로사로 죽으면 좋을 것 같다. 다만 그렇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은 부모님을 모시고 좋은 곳에 여행 한번 가보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어떤 친구는 그렇게 생각이 든다면 미리 부모님께 틈틈히 잘해야지 그렇게 한번 여행이나 간다고 되는 것이냐고 무책임하다고 꾸짖더군요.

또 다른 친구는 제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가고 왠지 짠하다고 공감을 표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있어 산모들의 출산을 돕는 의사로 산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분만 의사로 일하면서 크게 병원을 확장하지도 못하였고 산과 분야에서 의미있는 업적을 남기지도 못하였습니다.

제 좁은 소견으로는 제가 다른 의사들보다 실력이 모자라거나 또는 불성실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얼마전 글에 제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3실이라고 쓰기도 했다시피 저는 진실, 성실, 내실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며 지금껏 제가 산전 진찰하던 산모 중 직접 분만까지 돕지 못한 경우는 고위험군이라 대학병원으로 이송한 분들 뿐이고 양심에 비추어 걸리는 진료 행위를 한 경우는 단 한번도 없습니다. (몇년전까지 하던 낙태 시술의 경우만 제외하고)

물론 그동안 의료 사고도 있었고 의료 분쟁도 겪었지만 솔직히 다시 돌아간다 한들 제가 달리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의사로서, 산부인과 의사로서 자긍심이 크기 때문에 몇년째 같은 코트 하나로 겨울을 나고, 다 떨어진 구두를 몇년째 신고, 낡은 차를 10년째 몰고 다니지만 전혀 거리낌이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지나친 자긍심이 오만해 보이고 무뚝뚝해 보이는 모습을 만든 저변의 원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금 바뀌어 보려 합니다.

누구보다 철저히 산모와 환자를 위하면서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차가운 머리만으로 한 반쪽짜리 최선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모자란 것이 지금의 초라한 (경제적인 점에서) 의사의 모습을 만들게 되지 않았을까 해서 어색하여 잘 되지는 않지만 조금은 산모와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느끼고 공감해 보려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어줍잖은 자만심이겠지만 감히 제가 의사로서 다른 사람보다 유일하게 부족한 것은 그것 뿐이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물론 규모도 작은 병원을 운영할 수 밖에 없다시피 자본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모자란 것이 많지만 그런 것들은 제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인데다가 저는 그런 것은 껍데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성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바뀌어 봐야 아마도 그저 약간 뿐이겠지만 그래서 무뚝뚝 대마왕에서 대자는 떼고 그냥 무뚝뚝 마왕 정도이겠지만 그것이 문제였다면 그렇게 해서 병원도 잘 되고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롤모델이 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무뚝뚝 대마왕이 아닌 무뚝뚝 마왕으로의 변신에 성공하더라도 원칙 존중, 생명 존중을 바탕으로 한 병원으로서 든든히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진오비 산부인과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비록 규모는 작지만 철저한 원칙적 진료를 내세운 병원이 어찌되는지 눈여겨 보고 있는 동료와 후배 의사들에게도 그렇고, 그리고 양심적이면서도 성실한 자질의 의사들이 꼭 필요한 산모와 환자들에게 그런 철학으로 꾸려가는 병원 중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것은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진오비 산부인과의 건승을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많은 분들의 성원과 격려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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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olid5290 등록시간 2014-04-10 15:16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진오비 산부인과에서 앞으로도 행복하게 탄생하는 아기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더불어 선생님의 건강도 여러가지 여건들도 더 나아질 것이라 믿습니다~힘내세요~^^

댓글

일요일 오전에 분만실에서 김원장님이 당직이셔서 심원장님 오시기 전에 내진을 해 주시느라 뵈었어요. 그리고 분만후 일요일 당직인 심원장님이 당일 밤에 월요일 오전에 병실에 들리셔서 이것저것 챙겨주셨죠,, 그   등록시간 2014-04-12 12:11
성원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초심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등록시간 2014-04-10 15:56
#3 이연경 등록시간 2014-04-20 13:28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우와 멋져요원장님!^^ 궁금한게 있는데요.. 분만을 접어서 그나마 시간이 난다고 생각되는 지난2년동안은 가족,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오신적이 있으신지요??

댓글

낙태근절 운동한다고 바빠서 못갔습니다. ㅠㅠ. 경제적 정신적 여유도 없었기도 하고.  등록시간 2014-04-20 13:33
#4 bagni 등록시간 2014-04-25 14:56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전 한번 진료 봤지만 임신초기부터 그간 블로그에 있는 글들 보면서 이런 분도 있구나 신기했습니다ㅡ 제일 신기한 건 이런 솔직한 글들, 직업상으로 만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의사가 그런 건 처음 봅니다 신랑과 저는 간호사로 근무했었고 저는 분만실에도 있었거든요 좋은 선생님들도 많겠지만 산모들 의견을 존중해주고 소통에 노력하는 분은 선생님 밖에 못 봤습니다^^  변신까지 하신다니 더 멋진 산부인과 의사가 되시겠네요~ 와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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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나 병원이나 부족한 것 투성인데 그나마 솔직함이라도 있어야 할 듯해서...여하튼 좋게 보아주시어 감사합니다.  등록시간 2014-04-2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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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gges [2019-12-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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