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그리고 산부인과학의 성격은 어떤 것에 가까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의학 교과서는 과학책인가 역사책인가?"라는 제목을 달까 잠시 고민했었는데 역시 산부인과학 넓게는 의학은 그 둘 또는 예술을 포함하여 셋 모두를 다 아우르는 종합 학문인 듯 싶어 이 글의 제목을 위와 같이 붙였습니다.

제가 전에 의과대학 학생이던 시절 임신 출산을 다루는 산과학의 교과서인 윌리암스라는 책을 보면서 많이 답답해 했습니다.
다른 진료 과목의 책들도 어느 정도씩은 다 그런 것이 있기는 했지만 특히 윌리암스 책에는 Maybe라는 단어가 아마도 제일 많은 단어가 아닐까 저희들끼리 말하고는 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maybe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의미로 어떤 사안에 대하여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수학처럼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maybe라는 단어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를 택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여하튼 그렇게 maybe가 많아진 것은 산부인과학 또는 의학이 과학이나 수학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것을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가장 보편적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지침으로 삼는 학문 분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학 교과서는 역사책과도 같은 점이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인간의 질병에 대하여 그 진단과 치료 방법을 역사를 쓰듯 연대기 순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오랜 경험의 누적과 기록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하겠습니다.
의학이 과학과 닮은 부분은 일관된 어떤 경험이 과연 어떤 생리적 혹은 병리적 이유 때문에 생기는지 그 과정을 밝히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산부인과의 경우로 지연 임신의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을 해 봅니다.
지연 임신이란 출산 예정일이 42주가 넘은 것을 말하는데 산부인과 교과서에서는 대개의 경우 이 시기를 넘으면 유도분만을 고려하여 빨리 출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임신 전 마지막 생리 시작일로부터 만 40주 되는 시기 주변에 대부분의 산모들이 분만을 하는데 42주가 넘도록 출산이 되지 않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아기의 상태가 나빠진 채 출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거의 대부분의 산모가 임신 기간 40주 무렵에 출산을 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조차도 아직 과학적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또 왜 꼭 40주여야 하는지 다른 동물의 경우처럼 30주나 50주가 일반적 재태 기간이면 안되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그저 경험으로써 인간의 재태 기간이 40주라는 것을 아는 것 뿐입니다.
다만 지연 임신의 경우 태아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유를 결과론적으로 찾아들어가다 보니 태반의 노화 현상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태반이 노화되면 태아에게 가는 혈액 공급이 원할치 않고 그렇게 되면 태아의 상태가 위중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태반 노화 현상이 지연 임신에서 유도 분만을 고려하게 되는 과학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산부인과를 포함하여 의학은 역사학과 과학의 양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데 추가하여 예술적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학이 그러한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의료 시술을 하게 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적용이 다를 수 있고 그런 시술을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결국 어느 의사 개인입니다.
예술 작품이 예술가 개인의 경험과 자질에서 만들어지고 각각의 예술 작품이 고유한 특성을 가지는 것처럼 의사가 하는 각각의 의료 행위도 개인적 특성이 어느 정도 개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예로 든 지연 임신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서 말씀드리자면 42주에서 하루가 모자라도 유도 분만을 할 수 있고 하루가 넘었다고 해도 더 기다릴 수 있으며 그것은 각 개인의 상황에 대한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의사 개인이 판단하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분만에 임하면서 출산을 돕는 방식도 의사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라서 걸리는 시간이며 돕는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제왕절개나 흡입 분만을 선호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자연분만을 선호하는 의사가 있고, 제왕절개를 하거나 흡입 분만을 하거나 혹은 자연 분만을 돕는 경우에도 하나 하나의 예술작품이 다르듯이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많습니다.
더불어 의학의 실제 구현인 의료는 예술 작품들이 종종 그런 것처럼 상대방에게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란 역사학자이자 과학자이고 동시에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소년일 때는 과학자가 꿈이었고 청년일 때는 미술가를 동경했고 나이가 든 지금은 과거 선인들의 경험과 조언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이게 되면서 역사학자가 부러워지고 있으니 어쩌면 의사로서 그 모두를 조금씩은 맞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어떤 질병에 대하여 원인을 찾고 싶고, 왜 분만 진통은 40주에 오는 지가 궁금하고, 좋지 않은 결과에서는 왜 그런 결과가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그 과학적 근거를 찾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다는 점에서 보면 아무래도 과학자로서의 꿈이 제 꿈 중에서는 가장 크고 절실한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과학으로서의 의학, 경험 학문으로서의 의학, 개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예술적 측면의 의학이 모두 좀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과학으로서 환자에게 편리를, 경험 학문으로서 환자에게 안전을, 예술로서 환자에게 위무와 감동을 더 많이 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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