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워진 드 쿠닝의 드로잉, 1953
작가: 로버트 라우센버그
소장: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롤프 메르클레라는 독일의 심리치료사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타고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어떤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이 분이 산부인과 의사를 친구로 두었다면 이렇게 말하기는 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순산과 관련해서는 이 말이 완전히 반대로 작용한다. 임신과 출산을 기다린 일이고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순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보다 순산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순산을 위해 많이 노력하는 임신부라 하더라도 타고나기를 골반이 넓게 타고 난 사람보다 순산하기가 더 쉽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골반의 크기는 직접 내진을 통하여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는데 대체로 키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어서 키가 크면 골반도 넓다. 넓이만큼 아니 넓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골반 관절의 유연함이다. 나이가 젊을수록 관절이 유연하기 때문에  순산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에는 나이도 중요하다.

어느 날 접수된 초진 산모의  초진 기록지를 살펴보니  나이는 30대 중반에 키가 150cm가 채 안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초등학교 여학생의 학년별 평균 키는 1학년  120.3㎝, 2학년    126.1㎝, 3학년  132.3㎝, 4학년   138.2㎝, 5학년   145.5㎝, 6학년   152㎝라고 한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키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순산이 쉽지 않아 난산이 되는 여러 가지 경우들이 있는데 고도 비만 산모나 너무 마른 산모, 체구가 너무 작은 산모들은 난산이 되기 쉽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며 필요하면 제왕절개로 출산하면 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나는 가급적 산모의 자연분만을 돕고자 하는 편이고 산모도 그런 것을 강력히 원해서 오신 분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작은 체구의 산모나 비만한 임신부의 경우 자연 분만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난산이 되는 수가 많고 결국 산모와 아기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 당시의 상황을 기억을 더듬어 적어 본다.

"저희 병원은 어떻게 오신 건가요?"
"원장님께서 자연분만을 적극 도와주신다고 해서요."
"이미 임신 7개월이신데 다니시던 병원의 담당 선생님과는 상의해 보셨나요?"
"전에 다니던 병원의 원장님은 제 키가 작아서 자연분만이 어렵고 예정일 전에 날 잡아서 수술해야 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키가 상당히 작으시네요. 아무래도 체구가 작으면 난산이 되기 쉽고 해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옮기려고 상담차 왔어요."
"제가 보기에도 순산이 쉽지는 않을 듯싶은데 꼭 자연 분만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원래 출산이란 병이 아니니 다 자연 분만을 해야 하는데 의사들이 경제적 이유로 수술을 많이 권한다고 들어서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군요. 그런데 출산은 병은 아니지만 모두 자연 분만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수술을 해서 출산해야 하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들이 수술을 하게 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자연 분만하다 생긴 의료 분쟁 시 의사에게 돌아오는 책임이 크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그래도 저는 꼭 자연 분만을 하고 싶어요. 제가 체격이 작기는 하지만 의지 하나는 누구 못지않거든요."
"의지가 강하면 좋고 당연히 그것이 자연 분만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의지만으로 할 수는 없듯이 출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산 체조도 열심히 했어요. 원장님이 꼭 여기서 출산할 수 있게, 자연 분만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보시다시피 저희는 규모가 작은 병원이라 소아과 선생님이 상주하지 않아서  심한 난산으로 아기가 태변이라도 흡입하거나 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전원 하면서 생기는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나로서는 난산의 우려가 매우 높은 산모였기 때문에 가능하면 소아과 선생님이 상주하는 대학 병원을 추천하였지만 내 설득은 실패했다. 이렇게 대학 병원으로 가서 진찰받으시도록 권하는 경우 소수이기는 하지만 어떤 분은 찾아온 산모를 쫓아낸다고 서운하게 생각하면서 항의하고 가시는 분도 있었다. 내 말 주변이 서투르고 인상이 험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오신 분들 대부분은 이런 설득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료를 다니셨다. 그런 분들 중 2 / 3 정도는 자연 분만을 했고 나머지는 난산으로 결국 제왕 절개 수술을 통하여 출산했다. 내가 출산을 도운 분들 중 보통 1 / 10 정도만 수술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술률이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평범한 경우 즉 보통의 체격에 나이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인 경우 어떤 산모가 난산이 되고 어떤 산모가 순산을 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진통이 오고 나서 출산의 진행 과정을 보고 정상 과정인지 아닌지 판단하여 대응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모인 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학자들이 통계를 내서  평균에서 많이 벗어나는 경우 난산으로 정의한다.  난산의 분류는  잠복기 연장부터 개대 지연, 개대기 하강 지연, 개대기 하강 시간 연장, 만출기 정체 등으로 다양하다. 도대체 무슨 암호 같은 말인지 일반 사람들은 들어도 알 수 없는 용어일 것이다. 의사인 나에게는 용어는 낯설지 않지만  그 기준을 일일이 확인해 보지 않으면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출산 산모를 옆에 두고 이런 수치를 일일이 보아 가면서 난산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동안의 경험으로 정상적 진행인지 난산인지 판단을 한다. 경험이 많은 요리사는 만두를 빚기 위한 밀가루 반죽을 저울에 일일이 달지 않고 대충 손으로 조금씩 떼어 내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그 무게는 거의 오차 없이 일정하다.  어머니들이 찌개를 끓이면서 간장 등 양념의 양을 일일이 계량스푼으로 재서 넣지 않고 감으로 적당히 넣어도 맛있는 찌개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중국집 주방장이 10년 이상 만두피를 떼어 내다 보면 어머니께서  20년 이상 찌개를 끓이다 보면 그렇게 되듯이 산부인과 의사도 그렇게 된다. 난산인지 아닌지는 과정을 보고 판단하면 되니 경험이 많은 의사에게는 어렵지 않지만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난산이 될 산모와 순산이 될 산모를 자로 긋듯이 분명하게 알아내기는 30년에 가까운 산부인과 의사 경험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위에 사례로 든 임신부는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자연 분만을 했다. 나이가 30대 후반이라 골반이 유연하지 않고 체구가 아주 작은 임신부가 나에게 순산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다면 나는 예의상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속마음으로는 넓은 골반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지는 뒤에 말하겠다.
난산의 분류가 다양하듯이 그림의 종류도 다양하다. 물감의 종류도 다양하고 그리는 도구의 종류도 다양하다. 연필이나 펜을 이용한 드로잉 혹은 스케치가 있고 투명 수채화가 있는가 하면 불투명 수채화인 구아슈도 있다. 파스텔화나 크레용화는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나름의 특색이 있어 마니아들이 있다. 물론 서양화에서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은 유화나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아크릴화다.  그중에서 나는 유화를 좋아한다. 보는 것도 좋지만 한때 유화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그 이유는 마음에 안 들면 다시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필 드로잉도 지우개나 빵 조각으로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지만 아무리 깨끗하게 지워도 희미한 흔적이 남는다. 수채화나 파스텔화는 어느 정도의 수정은 가능하지만 좀 더 어둡게 하는 것이 가능할 뿐 이미 어두운 색조로 칠한 부분을 밝게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채화나 파스텔화는 밝은 색을 먼저 칠하고 나중에 어두운 색을 칠한다. 유화나 아크릴화는 어느 색이든 수정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위에 덧칠해서 새로 그릴 수 있는 것이 유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많은 명화들이 그 밑에는 전혀 다른 그림이 깔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적외선이나 자외선 혹은 X 선 분석 등의 최신 기법으로 새로이 밝혀졌다. 물론 밑에 가려진 그림은 화가가 보여주고 싶지 않아 덧씌워진 부분이니 그의 사후 이런 분석 기법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는 알 수 없었던 부분, 그림이 그려진 과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런 식으로 되살려 낸 그림 중  "지워진 드 쿠닝의 드로잉, 1953"이라는 작품이 있다.
"지원진 드 쿠닝의 드로잉, 1953"이라는 작품은 미국의 추상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무명의 화가이던 시절 당시 유명한 화가인 윌렘 드 쿠닝이 연필과 흑연, 그리고 잉크를 이용해서 그린 그림을 받아서 지운 작품이다. 그 작품에 자신의 이름 넣어서 전시를 함으로써 창작의 과정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물론 원작자인 쿠닝의 허락을 받아서 한 일이다. 이 작품은 쿠닝의 작품으로 가 아니라 라우센버그의 작품으로 남았고 원래의 쿠닝의 드로잉은 어떤 것인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 이 작품을 소장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지워진 그림 안에 무엇이 그려져 있었는지 엑스레이를 찍어서 복원을 했다. 지워진 것은 드 쿠닝이 그린 3~4명의 여성의 모습이었다.  지워진 이미지를 복원하는 기술이나 유화의 밑그림을 알아내려고 하는 시도는 아마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난산 산모를 알아내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충족의 차원 이상이다. 두 사람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순산과 난산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학자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임신한 산모는 누구나 많이 아프지 않고 오래 끌지 않는  순산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부는 어쩔 수 없이 난산이 된다. 협골반처럼 타고나는 체형이 그런 경우도 있고 자궁 종양이나 태아 위치 이상처럼 자신의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결정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모든 거대아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임신부의 영양 섭취와도 관련이 있는 거대아처럼 임신부 개인의 식생활 양상과 운동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있다. 세상사는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체형처럼  타고 나는 부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영양과 운동처럼 개인의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외모든 체형이든 바꿀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면 삶이 고단해진다. 물론 요즘은 성형 수술을 통해 외모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성장 호르몬 주사나 수술을 통해 키를 늘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한계와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순산을 원하는 산모들께 전하고 싶은 말은 바꿀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순산이 될지 난산이 될지는 타고난 체형에 많이 달려 있지만 노력도 상당히 영향을 끼친다. 결국 같은 체형일 경우 노력을 했느냐 아니냐가 순산과 난산을 좌우하게 된다. 물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산이 되거나 혹은 수술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런 경우 괜한 노력만 하고 순산도 못하였으니 손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동화에서 읽은 글을 하나 알려 드리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동화의 구체적인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저자도 잊어버려 인터넷을 뒤져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내 기억에 남은 꼬투리를 살려 적어 보기로 했다. 아마 원작과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다만 그 주제는 동일하다고 믿으면서 새로이 창작을 해 본다. 물론 "지워진 드 쿠닝의 드로잉, 1953"과 같은 획기적 재창조는 아니다.

세상 사는 것이 재미도 없고 지겹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에게는 나이 든 홀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병상에 눕고 말았다. 집안일은 이제 전부 소년의 차지가 되었다. 물을 길어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것들이 소년의 힘에 부쳤다. 더군다나 먹고 씻을 물을 길어야 하는 호수는 멀리 있었다. 길은 메말라서 먼지가 자욱했고 오고 가는 시간은 한 시간도 더 걸려서 지루하기만 했다.  소년의 몸만큼이나 큰 양동이를 지고 물을 길어 오면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반 양동이의 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매일 물을 길어야만 했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는 소년의 간병에도 불구하고 몇 달 후 눈을 감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는 것이 힘들기만 한 소년은 어머니도 잃게 되니 살아갈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날마다 물을 긷던 호수에 가서 빠져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집을 나서 호수로 향해 난 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후회와 미련도 조금 있었지만 이제 드디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다. 그동안 무거운 양동이 탓에 한 번도 살펴보지 못했던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때 소년의 눈 앞에는 몇 달 전 처음 다니던 때의 메마른 길은 간 곳이 없고 풀과 꽃으로 무성한 길이 펼쳐져 있었다. 길 옆에는 이름 모르는 여러 꽃이 알록달록 피어 있었다. 그동안 소년이 양동이를 지고 나르면서 아깝게 쏟고 말았다고 생각했던 물이 풀과 꽃에게는 생명의 물이었다.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서 꽃을 들여다보았다. 꽃잎에서 어머니의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가 시킨 심부름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소년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밑거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호수로 향하던 발길을 돌렸다. 이제부터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꽃들을 가꾸고 길을 단장해야 한다. 사는 것은 지루한 일이 아니며 어쩌면 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중간에 그만둘 수 없는 놀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년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순산 체조를 열심히 했으나 순산을 못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정성이 깃든 노력으로 비록 원래 목표하던 순산은 얻지 못했지만 체력을 얻었고 후회와 미련을 갖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들은 순산 못지않게 가치 있는 것들이다. 원래 산다는 것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 사실 목적지라면 누구나 무덤 밖에 더 있겠는가? 무덤에 가기 위해 그렇게 서둘러서 앞뒤 안 보고 달려갈 필요가 과연 있을까?
참고로 "드 쿠닝의 지워진 드로잉"은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지저분한 백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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