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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잔느 에뷔테른의 초상
작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소장: 개인

"천국에서 만나도 나의 모델이 되어 주겠소?"

몸이 약해 병치레가 많았던 화가 모딜리아니가 아내 잔느 에뷔테른에게 물었다는 말이다. 모딜리아는 미술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의 미남이라고 한다.  그는 눈동자가 없고 갸름한 얼굴에 긴 목을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딜리아니가 아프리카 조각상에 심취하기 전에 그린 초기 그림들에는  눈동자를 그려 넣은 모습도 있다.  다만 국내에는 눈동자가 없는 그림이 많이 소개되다 보니 눈동자가 없는 여인을 그린 화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총 25점이나 될 정도로 많은 그림을 잔느 에뷔테른을 모델로 그렸다. 잔느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와는 모델로 만났지만 연인이었다가 아내가 된 여인이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모딜리아니는 건강이 안 좋아 35세 되던 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죽었다.  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 날 5층 건물의 창문으로 뛰어내려 투신자살했다. 둘 사이에는 두 살 난 딸이 하나 있었고 잔느가 둘째를 임신한 지 8개월이었다. 잔느의 나이는 22살이었다.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 달라는 연인과의 약속은 지켰지만 자신을 위해서나 태중에 있는 아기를 위해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화가와 그가 그린 작품의 모델은 서로 연인인 경우가  많다. 모델을 그리다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서 모델 삼아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모딜리아니는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였지만 마네나 고야처럼 후자에 속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그림을 그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 화가도 있다. 이 세상에 사랑을 얻고자 해서든 혹은 사랑을 잃은 것을 달래기 위해서든 사랑 때문에 많은 것들이 생긴다. 사랑이 없었다면 수많은 예술 작품과 소설이나 시는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당연히 대부분의 임신과 출산도 없다.  톨스토이는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그런 주장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므로 사랑을 얻지 못한 사람의 슬픔과 외로움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니체는 루 살로메라는 여인을 많이 사랑했지만 끝내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 루 살로메는 니체의 철학을 마음에 들어해서  교류를 한 적이 있지만 니체의 프러포즈를 두 번이나 거절했다. 결국 니체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루 살로메가 관심을 보였던 책의 집필에 몰두했다. 니체 스스로도  루 살로메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 인정한  책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다. 니체는 말년에는 정신병원에서 10년을 보내다 삶을 마감했다. 그는 정신병과 싸우면서도 "우상의 황혼"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문구가 하나 있다.  "나를 파괴하지 못한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문장이다. 그의 이 말은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기술한 것이지만  의학의 측면에서 봐도 그리 틀리지 않은 지적이다. 독감이나 풍진 등 바이러스 질환을 예방하기 위하여서는 신체를 건강하게 관리해서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예방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예방 백신은 살아 있는 균을 약하게 해서 투여하는 생백신과 균을 죽여서 맞는 사백신이 있다. 예로 들자면 풍진은 생백신이며 임신 중에는 금기이고 독감은 사백신이며 임신 중에도 맞는 것을 권한다. 백신은 원래 균의 독성을 불활성화 시키거나 약하게  만들어서 주사함으로써 가볍게 병을 앓으면서 지나가게 하는 원리다. 그런 투병을 통해 몸에 생긴 항체는 나중에 강력한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막아낼 힘을 준다. 그러나 백신으로 생긴 면역 항체는 약한 편이라 평생 유지되지 못하고 중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자궁 경부암 백신도 3회에 걸쳐서 맞고 풍진 백신도 사춘기 이후에 한차례 더 맞아야 한다. 백신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된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평생 동안 유지되는 면역 항체가 생긴다. 다만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매년 변종이 생기기 때문에 과거에 백신을 맞았거나 앓고 나서 회복되었더라도 매년 새로 예방 접종을 해야 감염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니체보다 31살이나 어렸던 청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14살이나 많은 루 살로메를 사랑했다. 그가 루 살로메의 사랑을 얻으려 남긴 연시 "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는 유명하다. 릴케는 이름이 촌스럽다는 루 살로메의 지적으로 원래 이름인 르네 마리아 릴케를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바꾼 사람이다.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름을 바꾸는 것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얼굴과 체형을 바꾸는 것이 유행인 요즘 기준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성형 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모두 상대방의 사랑을 얻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는  다른 이에게 사랑 혹은 인정을 받고 싶어서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릴케의 연시는 지금도 사랑 시로 젊은이들의 편지에 많이 인용되고 있지만 지금 보면 내용이 좀 섬뜩하다. 좋아하는 관계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저런 시를 보내온다면  요즘이라면 스토킹으로 신고당할 수도 있다. 릴케의 시야 워낙 유명해서 아는 것일 뿐 나는 시를 그리 즐겨 읽지는 않는다.  대신 철학책은 학창 시절에 좀 읽어 봤다라기 보다는 좀 사서 쟁여 놓아 봤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읽어 보았던 책 중의  하나다. 학창 시절 책 읽기를 좋아해서 국내와 국외의 명작 소설은 거의 다 읽었고 남은 것은 철학책 밖에 없어서 니체며 하이데거며 여러 철학자의 책을 읽었다. 이는 삶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목 타는 갈증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어려운 철학책을 읽었다는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였다. 물론 "자라투스트라 이렇게 말했다."는 책은 어렵기도 하고 재미도 없어서  1 / 10 정도밖에 읽지 못하였고 0 / 10 만큼 이해했다. 전기나 에세이를 통해 그때 내가 만난 니체는 초라하고  불쌍한 루저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외톨이의 모습이었다. 니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런 암울한 인상의 대부분은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니체와 루 살로메의 관계와 비교하면 잔느와 모딜리아니는 행복해 보인다. 다만 둘이 사랑하며 함께 지낸 기간은 3년밖에 안될 정도로 너무 짧았다. 삶이란 길이보다 질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직원들에게 가늘고 길게 사는 것과 굵고 짧게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즉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지만 오래 사는 것과  짧더라도 부자로 화려하게 사는 것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한 사람은 짧굵 (짧고 굵게 줄임말)을 다른 한 사람은 가길 (가늘고 길 게의 줄임말)을 택했다. 마찬가지로 출산 진통 때 가늘고 길게 진통을 하는 것과 짧고 강하게 아픈 것을 선택하라면 대부분 산모는 짧굵을 선택 한다. 많이 아프더라도 빨리 진통을 끝내고 싶은 것이다.

진통할 때 통증이 심해 무통 마취 혹은 진통제를 원하는 분들이 있다. 촉진제는 자동차의 엑셀러레이터 같은 것이라 통증은 심하지만 빨리 출산을 마무리할 수 있고  무통 마취는 브레이크 같은 것이라 통증은 덜해지지만 수축이 약해져 출산 과정이 더 느려진다고 말해 준다.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 산모는 무통 마취를 선택하고 길게 아프기보다 많이 아프더라도 빨리 낳는 것을 선택한다. 길고 오래 진통하든 짧고 강하게 진통하든 출산 진통의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나는 그것을 "출산 통증 총량의 법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내 맘대로 만든 법칙  중에는 "부부간 백발 총량의 법칙"도 있다. 나는 나이에 비하여 흰머리가 별로 없다. 나를 모르는 사람은 실제 내 나이보다 5, 6 살 정도 젊게 보는 편인데 흰머리가 없어서라고 추측한다. 반대로 나보다 3살 덜 늙은 아내는 나이에 비하여 흰머리가 많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아내 또래의 친구보다 흰머리가 많아 거의 반백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내와  함께 나란히 걸어갈 때 누나를 동반한 남동생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절대 없다!! (봤지, 여보 ^^). 여하튼 나의 흰머리와 아내의 흰머리를 합치면 다른 부부들의 흰머리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람이 대체로 머리가 덜 세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사람이 머리가 빨리 센다. 나는 아내에게 큰 소리를 내면서 스트레스를 쌓지 않고 푸는 반면 아내는 나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의 흰머리를  보면 미안하지만 나의 검은 머리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머리라도 검어야 그나마 나이가 젊은 산모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머리가 다 세어 버려 할아버지 같이 생긴 의사는 아무래도 인기가 없다.  


니체는 독신으로 쓸쓸한 삶을 살았지만 56세의 나이로 비교적 오래 살았다. 모딜리아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지내다 35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다. 누가 더 나은 삶을 살았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길이와 질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당신은 짧굵과 가길 중에 어느 것을 원하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미 모딜리아니가 산 기간보다 20년 이상, 니체가 산 기간보다도 더 길게 살고 있으니 당연히 가늘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겠다. 이것이 지금 가늘게 사는 것에 대한 초라한 변명이라고 말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마음 같아서야 90세까지 살면서 8명의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막대한 부를 누렸던 피카소처럼 길고 굵은 모습으로 살면 좋겠지만 그것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욕심일 뿐이다.

니체가 정신병을 앓으면서도 "우상의 황혼"과 같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울증에 시달린 버지니아 울프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신병과 싸우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놓지 않는 니체는 버지니아 울프나 잔느 에뷔테른 보다 강한 사람이다. 니체가 아버지가 아닌 독신임에도 끝까지 병마나 외로움에 굴복하지 않은 점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어머니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하고 실제로도 대부분 그렇게 된다. 잔느와 같은 경우가 있지만 그런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다. 질병이든 우울증이든 혹은 사랑의 상실이든 인간을 굴복시키는 것은 많다. 그러나 어머니를 굴복시키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새 생명인 아기가 태어나면서 강한 여성이자 어머니도 탄생하기 때문이다. 물렀던 쇠는 뜨겁고 차가운 물속에 반복해서 잠기면서 강철이 된다. 그래서 잔느는 어머니였기 보다 여자였던 사람이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어머니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궁금하다. 덧없다고 생각한 인생에 자기가 지켜야 할 존재가 하나 더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하나는 사실 단순한 하나가 아니다. 자신의 온 존재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랑하는 존재다.

다음 글은  코트에 돌을 가득 채운 후 강으로 들어가 투신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의 글 "어느 작가의 일기"다.  

[그런데 인생은 아주 견실한 것일까, 아니면 매우 덧없는 것일까? 이 두 가지 모순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 두 모순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세계의 깊은 곳까지 다다른다.
다른 한편으로 이 두 모순은 일시적인 것이고, 곧 달아가 버릴 투명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파도 위의 구름처럼 지나가 버릴 것이다. 비록 우리들은 변하고,
차례로 잇달아 그처럼 빠르게, 빠르게 날아가더라도,
우리네 인간은 연속적이고 계속적이어서 우리는 스스로를 통해 빛을 발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빛이란 무엇인가? 나는 인생의 무상함에 너무 깊은 인상을 받아서, 종종 안녕이라는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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