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키클롭스
작가: 오딜로 르동
소장: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국립미술관

중국 전설에는 상상 속의 동물이 여러 종류가 있다. 용이나 봉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비목어(比目魚)라는 물고기와 비익조(比翼鳥)라는 새에 대하여는 대부분 사람이 잘 모른다. 비목어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항상 한쪽 면 밖에 볼 수 없어서 혼자서는 헤엄을 치면서 살 수 없고 둘이 같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물고기다. 비익조도 마찬가지로 날개가 하나뿐이라서 혼자서는 날 수 없다고 한다. 둘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비목어는 류시화 시인이 쓴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에 나오고 비익조는  노연화 시인이 쓴 공작새라는 시 정도에 등장할 뿐이다.
외눈박이 물고기는 시인의 시에서는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사람에게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시에서처럼 희망적이지는 않다. 사람의 경우 눈이 하나인 기형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의 이름을 따서 사이클로피아 (cyclopia, 단안증)라고 부른다.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영웅을 그린 화가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그들이 그린 것은 대개는 강력한 신이나 아름다운 여신들이다. 그러나 간혹 메두사 같은 무서운  여신이나 키클롭스 같은 괴물을 그린 화가도 있다. 원래 메두사는 포세이돈의 아내로 처음에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가 아테나 여신의 저주로  머리칼이 뱀이 되면서 무서운 얼굴을 변했다. 키클롭스는 제우스의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자식들로 외눈박이 거인 괴물이다.  행동도 그렇고 생긴 외모에도 그렇고 누가 보더라도 무섭다. 심지어 우라노스조차도  생김새가 너무 역겨워 지하세계에 오랜 시간을 가두어 버린다. 여러 화가들이 그린 키클롭스를 보면 대체로 두려움이나 혐오감을 유발하게 마련인데 유일하게 르동의 키클롭스만은 예외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기나 새끼들을 보면 누구나 귀엽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큰 머리와 눈, 검은 눈동자 때문이라고 한다. 귀엽게 보여 보호 본능을 유발해야 어른들이 연약한 아기를 돌보게 된다는 것이 진화 생물학자들의 주장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화가 르동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부모에 의하여 가족 소유 농장으로 보내져 외삼촌과 함께 쓸쓸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지병도 앓았다고 하며 결혼 전까지 외롭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대에 활동한 르누아르나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외부의 풍경이나 인물을 그린 것에 반하여 르동은 주로 상상 속의 인물이나 풍경을 그린 경우가 많았다. 외톨이로 지내는 아이들은 친구들과 누리지 못하는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를 상징주의 시대를 연 화가로 부른다. 그가 주로 사용한 미술 도구는 파스텔이다.  상징주의 화가는 아니지만 상상 속의 그림을 그린 또 다른 인물인 샤갈도 파스텔을 사용해서 그린 작품이 많다. 그런 점에서 보면 파스텔이라는 도구가 가진 특징은 무언가 아련한 느낌을 주는데 제격인 모양이다.

그림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상상이 철철 넘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빠질 수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작가인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186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르동은 23살이 되던 해인 1863년부터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동판화 작품을 그리면서 화가의 이력을 시작했다. 르동의 화가로서의 출발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출간은 불과 2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와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해도 1863년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캐럴이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지어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상상의 세계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 어른 들에게는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겠지만.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쳤다." 피카소가 한 말이다.

키클롭스는 자신과는 다르게 작고 하얀 피부를 가진 요정 갈라테이아를 사랑했다. 그러나 갈라테이아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키클롭스는 갈라테이아의 연인에게 바위를 던져 죽이게 된다. 잔인한 결말이지만 그림에서 애잔한 눈빛으로 갈라테이아를 숨어서 보는 키클롭스의 모습은 귀엽게만 보인다.  르동은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소녀가 있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갈라테이아를 사랑한 키클롭스의 모습에 담은 것은 아닐까.   

단안증은 아이의 어머니가 임신한 상태에서 방사능에 노출되거나 독극물을 섭취하였을 때 발생하며 두 안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기형이다.  1만 6000분의 1의 확률로 발생하는 매우 드문 기형이다. 이런 기형을 가진 아기는  신체 다른 부분에도 심각한 장애가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  태어난 후 수일 내에 사망하고 만다. 단안증이야 흔한 기형이 아니니 그것을 걱정할 산모야 없겠지만 이런저런 소소한 기형을 다 포함하면  아기 열 명 중 대략 한 명은 선천성 이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선천성 이상아는  전체 신생아의 10.3%를 차지했다고 하고 다른 연구 기관의 조사도 비슷하다. 다만 일선 개원 의사인 내 경험으로 보았을 때 그 정도로 선천성 이상아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여하튼 10%까지는 아니라도 이상이 있는 아기가 아주 드물지는 않기 때문에  임신한 산모나 가족들은  출산하는 순간까지 내 아기는 괜찮을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과거부터 태교라고 해서 임신 중에 지켜야 할 여러 금기도 이런 불안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선천성 기형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는 여러 형태적 기능적 이상을 말한다. 기형은 출산 전에 진단이 되는 경우도 있고 출산하고 나서 진단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초음파 진단 기술이나 혈액 검사, 또는 양수 검사를 통해 출산 전에 미리 기형을 진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형이 출산 전에 다 진단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기 기형 중에는 외부에서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밖에서 확인이 가능한 기형인 구순열이나 다지증 등 보다는 보이지 않는 이상인 심장 이상이나 내부 장기의 이상이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부의 이상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니까 당장 심각하게 와 닿지 않는 수가 많지만 외부에서 보이는 이상이 있으면 산모나 의사나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외부 이상 중에 하나가 포코멜리아 (phocomelia)라고 부르는 기형이다. 사지가 제대로 발달이 되지 않아서  팔다리가 생기지 않고 손과 발만 생기거나 지느러미 모양의 팔다리를 가지거나 하는 기형이다.

1957년에 독일의 제약회사가 탈리도마이드라는 입덧 치료제를 개발했다. 입덧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임신부의 생활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트리는 증상이다. 심하면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어서 체중이 몇 kg씩이나 빠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입덧에 효과가 있는 약이 개발되었으니 입덧을 경험한 임신부들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가 따로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약은 독일을 포함한 유럽 지역 등 전 세계 48 개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문제는 그 후 수년이 흐른 후 드러났다.  그전까지는 보기 드물던 포코멜리아 기형이 갑자기 늘어났다. 역학 조사를 거쳐 임신 초기에 임신부가 복용한 탈리도마이드가 포코멜리아의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임신 초기에 복용할 경우 탈리도마이드는 사지 발달 장애뿐 아니라 얼굴이나 장기의 기형 등 심각한 기형을 초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약의 사용으로 인해 약 1만 2000 명 정도가 이런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니까 의료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재앙 중 하나다.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처럼  외부의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하여 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례는 역사에서 찾기 힘들지 않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약으로 인해 이처럼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결국 탈리도마이드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런 탈리도마이드가 다시 등장하였다. 물론 입덧 완화제로서가 아니라  나성 결절성 홍반 즉 나병이나 에이즈 관련 궤양, 뇌종양 등 일부 암, 루프스 등의 자가면역성 질환에 대한 치료제로 재등장하였다. 탈리도마이드는 과도한 자극을 받은 면역체계가 생산하는 염증성 단백질을 억제할 수 있는 데 이런 원리에 의해 이 약이 나병과 루프스 등의 자가면역성 질환에 효과가 있었다. 에이즈의 경우에는 원인균인 HIV 바이러스를 억제한다고 밝혀졌다. 또한 이 약은 종양에 대한 혈액 공급을 차단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어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요법과 함께 이를 투여하면 이론상 암세포는 굶어 죽게 된다고 한다.

결국 방사선도 그렇고 약도 그렇고 의료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수단들은 말 그대로 도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도구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 사용하는가에 따라 아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날카로운 칼은 강도에게는 생명을 빼앗거나 재산을 빼앗는데 쓰이는 위험한 도구지만 요리사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훌륭한 도구다. 다만 조심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요리사의 손도 다칠 수가 있다. 무딘 나무가 아닌 날카로운 쇠로 만든 칼처럼 강력한 도구는 반대로 강력한 위협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의료에서도 효과적인 시술이나 약물이라 하더라도 반대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미리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기형아에 대한 수술이나 기형임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기형이 없는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르동의 그림 중에 "거미"라는 제목의 그림도 많이 알려진 그림이다. 거미는 대부분 사람들이 징그럽다고 느끼는 동물 (곤충이 아니고 절지동물이다.)이다. 그러나 나의 큰 딸의 최애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니고 거미다. 그것도 크기가 엄청나게 큰 타란툴라 거미를 좋아한다. 특이한 취향이다. 취향이란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은 아니니 내가 뭐라 할 것은 없다. 다만 거실벽에 커다란 거미 인형이 붙어 있어 이틀에 한번 꼴로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들어갈 때 한번 나올 때 한번 해서 두 번은 반드시 봐야만 한다. 지금은 내가 동업한 상태가 아니고 혼자 근무하느라 1년 365일 병원에서 숙식하면서 지낸다. 덕분에  그 징그러운 거미 인형을 보지 않는다. 다행이다.

화가들은 활동 중에 화풍에 있어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피카소의 경우 "청색 시대", "장미 빛 시대", "원시 시대", ""입체주의 시대" ’등으로 나누어 지고 르동은 "검은색 시대"와 "색채 시대"의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검은색을 좋아해서 옷이며 신발  혹은 심지어 휴대폰조차 검은색뿐이지만 르동의 작품은 "검은색 시대"의 것 보다 "색채 시대"의 작품이 더 많다. 거미는 검은색 시대에 그려진 것이고 키클롭스는 그가 죽기 2년 전에 그린 것으로  색채 시대의 작품이다. 르동은 나이 40에 결혼을 했고 49세에 아들을 얻었다. 결혼하고부터 그의 그림에 색이 들어가면서 색채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림의 대상으로 꽃이 많아진 것도 그 시기로 밝은 색감의 다채로운 유화와 파스텔화를 많이 남겼다. 역시 결혼은 한 사람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모양이다. 물론 나에게도 결혼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생겼고 가장으로서의 무게도 커졌다. 그러나 나의 검은색 시대는 변함이 없다.

참고로 나는  파스텔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화려한 색감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특히 그림을 그리고 나서  파스텔이 묻어 나와 손이나 팔이 지저분해 지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연필 드로잉도 그렇지만 파스텔화는 반드시 유리 액자에 넣거나 아니면 파스텔이 가진 색감의 손상을 감수하고 정착액을 뿌려야 한다. 유화도 서툰 초보자들은 그리다가 손이나 팔에 묻기는 하지만 마르고 나면 더 이상 묻지는 않는다.

의과 대학에서 미술반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동아리에서는 기분 전환 삼아 단체로 야외 스케치를 가고는 했다. 야외 스케치는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초보라 서툴렀던 나는 손이나 옷에 유화 물감이 묻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여름날 야외 스케치를 태릉이든가 광릉이든가 교외의 수목원으로 간 적이 있다. 수목원이라 나무가 많아 번트 엄버 (고동색 계통의 색으로 이산화망간 재료의 유화 물감)를 많이 사용한 그림을 그렸다. 옷에 물감이 조금  묻었지만 마땅히 닦을만한 시너가 없어서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덜 마른 캔버스를 조심해서 들고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는 시 외곽을 넘어가면 헌병이 버스로 올라와 검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은 다 지나치고 유독 나에게만 와서 신분증을 보자고 한다. 물론 학생증이 있어서 보여주기는 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려서 혼났다. 아마도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젊은이가 옷에 피와 비슷한 색깔의 것을 군데군데 묻히고 있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원래도 고동색 계통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뒤로 고동색은 특히 더 싫어하게 되었다. 묻기 쉬운 재질의 미술 재료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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