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키스
작가: 마리 로랑생
소장: 프랑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중고등학교 시절은  감정의 변화도 심하고 이성에 대한 관심도 커서 흔히 질풍노도의 시절이라고 불린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에  교실 뒤편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나서 가보면 소위 빨간책을 서로 돌려 보거나 춘화를 보느라고 시끄러운 경우가 많다. 빨간책은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남녀의 사랑이 주제이면서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통속 소설을 말한다. 춘화는 성행위를 찍은 사진들인데 주로  외국의 사진들이다. 어디서 구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학교에서 소위 날라리라고 하는 아이들이 구해서 유통하고는 했다. 물론 나와 같은 범생이 혹은 자발적 왕따들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도 따로 없어서 그 시절 학생들의 성교육은 학교가 아닌 빨간 책과 포르노 비디오가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의 책이나 춘화의 내용이라고 해 봐야 지금은 공중파 방송에서도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수위였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길거리에서 남녀 간의 키스 장면을 보는 것은 거의 없던 시절이니 키스 사진이나 누드 사진만으로도 학생들의 흥분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성적인 묘사가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그런 성애 소설보다는 D H  로렌스의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이나 라몽 레디게의 "육체의 악마"가 훨씬 에로틱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이 책들도 소설과 외설의 경계에 있거나 도덕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로렌스의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작가의 고향인 영국에서 32년간 금서이다가 1960년부터 일반에 판매되었을 정도다.

사실인지 모르겠는데 들은 바에 의하면 미술 대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갖게 되는 실기 시간 중 처음 누드화를 그릴 때가 가장 설렌다고 한다. 여자의 누드를 그릴 때는 남학생들은 중간중간 나가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들어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뜨거워진 피를 식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스케치를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남자의 누드를 그릴 때 여학생들이 나가서  열을 식히고 온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의사로서 내가 언제 여성의 음부를 보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아마도 해부학 실습 시 시신의 모습을 통해서일 것이고 산 사람을 대상으로는 산부인과 인턴을 할 때 아닐까 싶다. 그때의 내 감정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흥분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 본 여성의 음부는 분만하는 산모였거나 아니면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을 하는 환자의 경우였을텐데 그런 상황에서 성적인 생각을 한다면 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수술을 위해 마취를 해 놓고 유방이나 음부를 만져서 소송에 걸린 변태 같은 의사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에 관계없이 단순히 이성의 성기를 본다고 해서 성적인 흥분이 아무 때나 일어나지는 않는다. 아니 동물조차도 아무 때나 발정하지는 않는다.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아이들이 물어올 때 당황하는 분들이 많다. 부끄러워서인지 그럴 때면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해서 네가 생겼어" 하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어린아이 때는 엄마 아빠가 사랑하면 아기가 저절로 생긴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는 서로 손을 잡거나 키스만 해도 아기가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림 중에는 성관계를 하는 것을 직접 묘사한 그림은 거의 없다. 아무래도 그런 정도의 노출은 예술 작품으로 취급받기가 어렵고 논란에 휩싸일 것이 뻔한 탓이다. 성관계 모습이 아닌 그저 보통의 여성이 나체로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인 "올랭피아"도 당시에 천박하다고 수많은 욕을 먹었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포옹이나 키스 정도가 최대한의 허용 범위다.  그래서 키스하는 장면을 그린  화가나 조각을 한 조각가는 많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키스 장면은 마리 로랑생의 작품인  "키스"다. 그녀는 그림에 특별히 설명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그림도 별다른 해석이나 설명이 없다. 사실 키스라고 하면  로댕의 "키스" 정도는 되어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한데  로랑생의 이 그림은 키스라기보다는 뽀뽀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그림에서는 성적인 분위기는 느낄 수 없고 대신 풋풋하고 포근한 사랑만이 느껴진다.  물론 꼭 입에 맞추는 키스가 아니라서 그런 느낌을 주는 건 아니다. 클림트의 작품 "키스"는 직접 입에 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뺨에 하는 키스임에도 불구하고 로랑생의 키스와는 상당히 다르게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

마리 로랑생은 앙리 루소 등과 어울리며 "몽마르트르의 뮤즈"로 불렸던 화가다.  코코  샤넬, 거투르드 스타인과 더불어 당대 활동하던 여류 3인방 중 한 명이다. 그녀는  핑크와 옅은 블루, 청록색 등 주로 파스텔 톤의 색을 사용하여 샤갈과 더불어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낸 작가로도 꼽힌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연애로도 유명하다. 아폴리네르는 로랑생과 헤어지고 난 후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시를 썼다. 그의 시 중 가장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라는 제목의 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이곳에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이곳에 머문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재미있게 봤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출처는 모르겠다.  어느 사춘기 소녀가 엄마의 말을 안 듣고 속을 썩였다. 그래서 엄마가 딸에게 말했다.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냐?"
딸의 대답은 아마 다른 부모들도 많이 들어 보았을 만한 대답이다.
"누가 낳아 달랬어?"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래?"
그 이야기는 정자가 열심히 달려 난자에 가서 수정이 되었으니 그렇게 달려간 네 책임이 아니냐는 의미였다.
딸의 대답은 엄마와의 언쟁을 마무리를 했다.
"누가 경기를 펼치래?"

아빠 엄마의 성관계로 인해 정자가 방출되었고 그래서 정자는 앞으로 달려가는 정자의 운명에 따라 난자를 향해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자신이 태어난 것은 엄마 아빠의 탓이지 자신의 탓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어쩌다 갑자기 이 세상에 내 던져진 피투성의 존재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생명의 시작이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 (수정설)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는 순간 (잉태설)이라는 이도 있다. 태동이 처음 느껴지는  순간 (태동설)이라는 이나 산모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나는 순간 (출산설)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잉태의 순간부터 보호해야 할 생명으로 보았다. 여하튼 어느 순간부터 생명으로 보든 가장  최초의 출발이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둘의  결합이라는 장대한 드라마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의문들이 있다. 정자는 왜 그렇게 많은 수가 생겨서 사정이 되는지, 사정된 정자는 어떻게 난자를 찾아 가는지, 난자는 수정되는 정자를 어떻게 고르는지, 왜 정자는 성관계에 의한 오르가슴에 의하여 배출이 되는 데 난자는 성적 자극과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배란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는지 등등의 수많은 의문들이 있다.

정자는 왜 그렇게 많은 수가 생겨서 사정되는가?
여성의 난소에는 신생아 시기에는 200만 개 정도의 원시 난자가 있다가 사춘기에 다다르면 30만 개 정도의 난자만 남는다.  그리고 배란이 될 때는 성숙하는 난자 한 개당 300개에서 1000개 정도의 난자는 소멸되어 흡수되어 버린다.  따라서 결국 성숙된 난자로는 평생 400번 내지 500번 정도 배란이 되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배란될 경우 기간으로 34 년이 걸린다. 난자도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숫자가 있다가 아주 적은 숫자로 줄어드는 데 정자는 여전히 많은 수가 그대로 성숙되어 배출이 된다. 난자처럼 정자도 필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살아서 난자에 도달하는 정자는 보통 200마리에서 300마리 정도라고 하는데 현재의 1/ 100 만 방출해도 두어 마리는 난자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보통 인간 남성에서는 한번 사정에 수억 마리의 정자가 나오고 그 수가 6000만 마리보다 적으면 임신하기 어렵다. 이런 점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주 심한 낭비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왜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진화 생물학자들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정된 정자는 어떻게 난자를 찾아 가는가?
정자는 자궁 입구부터 난관 중심까지 17cm 정도 되는 거리를 가야 한다. 이는 정자 전체 길이의 3000배에 해당하는 거리다. 1.7m 키의 인간으로 환산하면 5100m 즉  5km 정도의  깜깜한 바다를 헤엄쳐 가는 셈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가까운 마포대교의 한강 폭은 1km 조금 넘는다고 하니까 한강으로 치면  5번을 건너는 셈이다. 그것도 그냥 바다가 아니라 온갖 수초와 바위 덩어리같은 방해물이 있는 바다다. 더군다나 나팔관은 양쪽으로 두 곳에 있는데  어느 쪽 나팔관에 있는지도 모르는 난자를  정자가 어떻게 찾아가는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하여 아직  정립된 학설은 없이 몇 개의 가설만이 있다.
하나는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여포 세포에서 정자를 유인하는 물질이 분비되어 정자를 유인하다는 가설이다. 즉 수정소라고 부르는 물질 때문이라는 것인데 수정소는 분자량이 약 30만 인 당단백질이라고 하며 정자는 이 물질에 대하여 이끌리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질은  동물의 종류에 따른 특이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 정자가 다른 동물의 난자에 의해 유인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의 문제는 그런 물질은 소량이며 난자의 아주 가까운 주변에만 분포할 뿐이기 때문에 자궁이나 질에까지 분비되어 정자를 유인하는 효과를 발휘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가설은 난자가 있는 곳의 산성도 차이에 의하여 찾아간다는 가설이다. 정자는 알칼리성이 될수록 빨리 움직이는데 질은 산성이 강하고 난자가 있는 주변은  알칼리성이 강해서 난자에 가까워지면 빠르게 움직인다.
세 번째 가설은 온도차에 의하여 정자가 난자를 찾아간다는 가설이다. 대체로 난자는 주변보다 약 2도 정도 온도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정자는 따뜻한 곳으로 향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온도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정자가 수정을 위하여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에 있는 난자를 찾아간다는 학설이다.
마지막 가설은 후각 가설이다. 정자는 후각 기능이 있다고 한다. 정자의 표면에는 콧속의 후각세포처럼  냄새 수용체가 있다. 정자의 냄새 수용체는 난자에서 나오는 냄새 분자를 찾아서 경로를 찾게 된다는 가설이다.

난자는 수정되는 정자를 어떻게 고르는가?
300마리나 되는 정자가 난자에 도달하게 한다고 했는데 그럼 난자에 가장 먼저 도달한 정자가 바로 수정이 되는 걸까?  아니다. 늦게 도착했더라도 특정한 위치에 있는 한 마리의 정자만이 난자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이후에는 견고한 수정막이 형성되어 다른 정자는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정자는 X와 Y 염색체 둘 다 가지고 있고 난자는 X 염색체만 가지고 있어서 성을 결정하는 것은 남자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난자의 특정 영역에서만 정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는 학자들은 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일방적으로 정자에게만 그 역할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난자가 어떤 정자를 고르는지 또 어떤 과정을 통하여 고르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알려져 있지 않다.

왜 정자는 성관계에 의한 오르가슴에 의하여 배출이 되는 데 난자는 성적 자극과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배란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는가?
이 역시 잘 알 수 없는 문제다. 우선 여성과 남성 모두 고정적으로 일정하게 배란과 사정이 되는 경우와 아니면 둘 다 성적 자극에 의해 배란과 사정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가정해 본다.  남성도 여성처럼 성적 자극과 관계없이 한 달에 한 번씩 사정이 된다고 가정하면 난자와 정자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적어진다. 지금처럼 남성 만이라도 성관계 시마다 정자가 배출되는 경우에 비하여는 임신율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종족의 유지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아니면 여성도 남성처럼 성관계로 오르가슴을 느낄 때마다 난자가 배출되도록 되었다면 어떨까?  그런 경우 두 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경우는 남성처럼 매우 많은 난자들이 수정될 테니까 많은 아기를 임신해서 출산해야 하므로 모체의 건강을 위하여 어류나 개구리 같은 양서류처럼 체외에서 수정하고 발육시키는 상황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소수의 자녀를 두게 하려면 정자와 난자가 아주 가끔 만나야 할 테니까 1 년에 한 번 정도쯤으로 성욕이 발생하도록 제한해서 배출을 줄이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두 가지 모두  가능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잦은 쾌락의 대가로 많은 자식을 양육하는 부담을 져야 하거나 아니면 소수의 자녀를 양육하는 대신 잦은 쾌락을 포기해야 할 테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과정에는 우리가 답을 찾지 못한 많은 의문이 있다.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도 인과를 알기 어려운 수많은 우연이 숨어 있다. 분명한 건 갈등의 순간도 있고 고난의 시기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이루어낸 사랑의 결실로 한 아이가 잉태되고 태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사탕 중에 소금 사탕이 있다. 짠맛이 나는 사탕이다. 내가 보기엔 요즘 인기라는 흑당 커피보다 훨씬 달다. 사탕도 그렇지만 갈등이라곤 전혀 없는 해피엔딩의 빨간책들은 잠시 흥분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빛의 화가라고 불리며 깊이 있는 작품을 많이 남긴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어둡게 처리한 부분이 많다. 삶도 그럴 것이다. 고난의 시기가 없이  평온하기만 한 삶은 지루할 듯싶다. 어떤 사람이 죽어  천당 같은 곳에 갔다. 일을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넘쳐나고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이며 새들의 노래는 듣기에 좋았다. 그러나 그 외에는 할 것이 없어서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지루한 날들이 한 달 두 달 이어지자 결국 무료함에 지친 그는 옆에 있는 천사에게 말했다.
"할 일 없이 지내니 편해서 좋기는 한데 지루해서 못살겠습니다. 계속 이런 상태로 살아야 한다면 못 견딜 것 같습니다. 차리리 지옥이 낫겠습니다. 그리 보내 주십시오."
그러자 천사 아니 사신이 말했다.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럼 너는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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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ts [2020-06-06 23:43]  peterpan84 [2020-04-26 09:49]  daphne [2020-04-1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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