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는 여자
작가: 파블로 피카소
소장: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  

1. 많이 아프겠네. 약 사다 줄까?
2. 요즘 벌이 독하다던데 조심하지 그랬니.
3. 산이고 들이고 그렇게 칠랑 팔랑 나다니니 벌에 쏘이는 거 아니냐. 그러게 누가 그렇게 쏘다니랬냐?
4. 침묵

창천동에서 홍대 정문 쪽으로 넘어가는 길은  좁은 편에 구불구불 휘어져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책거리 길만큼은 못하지만 번잡스러운 마포대로 길에 비하여 조용해서 산책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 며칠 전 그 길을 걷다가 저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울고 있는 이십 대 초반쯤의 여자를 보았다. 혼자는 아니었고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중이었다. 남들이 보는 곳에서 웃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없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우는 것은 피하려고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다. 그럼에도 거리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다. 그녀가 울고 있는 이유나 남자가 하는 해명이 무엇인지는 내가 알 바도 아니고 알 수도 없다.  다만  그들이 신고 있는 신발이 내 눈길을 잡아서 잠시 걸음을 천천히 걸었다. 한동안 유행한 신발로 삼색 검은 선의 아디다스 운동화다. 나는 아내와  커플 신발이든 옷이든 입어 본 적이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사귀고 나서 어느 정도 친밀해지면 커플 옷을 입거나 신발을 사서 신는다고 들었다.  신발에 묻은 얼룩이 그들이 사귄 기간이 최소 몇 달은 넘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순면의 하얀 천에 묻은 얼룩이 더 눈에 띄는 것처럼 커플 운동화를 신은 여자의 울음이 지나가는 차 소리를 뚫고 내 귀에 울렸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고사성어도 있다시피 전혀 모르던 사람이 만나 사랑하게 되거나, 사랑하던 사람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커플 신발이 아니라 알이 굵은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여자가 울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닌 세상이다. 그럼에도 여자가 신은 운동화가 처량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는 남자의 뺨을 세게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물론 이유 없는 폭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경찰서에 붙들려 가고 싶지는 않아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차라리 남자가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면 인생살이의 달고 쓴 이치를 깨달아 가는 과정쯤으로 이해하고 미운 마음이 덜 들었을 듯도 싶다. 때로는 변명의 말보다 침묵이 필요할 때가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현대 미술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을 남긴 화가로도 유명하지만 여성 편력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그런 여성 중 한 명이 사진작가인 도라 마르다.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이다.  피카소가 쉰다섯 살, 도라 마르가 스물아홉 살에 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피카소는 부인 올가가 있었으며 마리 테레즈라는 정부도 있었다.  마리 테레즈와의 사이에는 딸도 두었다고 한다.  부인과 애인이 있는데도 도라를 연인으로 삼았기 때문에 도라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순탄할 수가 없었다. 이런  복잡한 관계 탓에  도라는 눈물로 매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녀가 하도 자주 울어서  피카소는 "나는 울지 않은 도라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도라는 진심으로 피카소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떠날 수가 없었다.  위 그림은 피카소가 울고 있는 도라 마르를 모델로 하여 그린 작품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휴무인 주방 여사님을 대신해 아내가 입원 산모들의 식사를 위해 병원에 오는 날이다. 어제 청계산에 갔다가 벌에 물려서 뺨이 벌겋게 부었다면서 잔뜩 부풀어 오른뺨을 내게 보여준다. 박 씨 부인이 되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왠 박 씨 부인? 박 씨 부인은 나중에 이뻐지기라도 하지. 내게 호 하고 불어 달라는 의미는 아닐 터이고 아마도 이렇게 힘든 와중에 도와주러 왔으니 고마워해라라는 의미였을지 모르겠다. 글의 처음에 적은 말은 그런 아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리스트다. 뺨을 보여주는 아내에게 내가 실제로 한 말은 그중 세 번째 말이다. 아마 다른 사람이 그런 나를 봤다면 내가 홍대 거리의 커플을 보고 그런 것처럼 내 뺨을 세게 한 대 때려 주고 싶어 할 것 같다. 그런 점은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차라리 침묵하고 있는 것이 더 나았을 숱한 순간들에서  나는 그러지 못했다. 4가지 말 중에서  첫 번째나 두 번째의 말을 해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았겠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천냥 빚을 갚는 것보다 말 한마디가 더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침묵의 미덕을 깨달을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해 보아야겠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뺨이라도 한 대 맞는 불상사는 생기면 안 되니 말이다.

전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출산할 때 남편이 함께 있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남편이 해외에 나가 있는 경우라서 갑자기 시작된 진통에 오지 못한 경우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중요한 업무 때문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들은 사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산모도 크게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기의 아빠가 없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허전할 수밖에 없다. 미혼모로 출산하는 산모들이 그런 경우다. 미혼모라는 어감이 좋지 않아서 요즘은 한부모 가정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만 십여 년간 미혼모의 출산을 도운 적이 있다. 그런 경우 간혹 남자 친구가 함께 오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산모 혼자서 출산을 감당한다. 남자 친구와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남자 친구는 아예 산모가 임신한 것도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의 출산에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다만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산모가 느끼는 진통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심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엄살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아무도 옆에서 함께 나누어 주는 사람이 없이 오롯이 혼자 진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기를 산모가 직접 키울 형편이 못되어  입양을 보내기로 이미 결정한 산모들도 있다. 그런 산모의 출산을 도울 때면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나도 남자지만 자신의 유전자도 반이 섞인 아기를 낳는데 남자로서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출산 때 남편이 없다고 해서 출산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노래 중에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노래가 있던데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경우에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물고기 중에는 구중 부화종 (마우스 브리더, Mouth Breeder)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물고기가 있다.  포식자들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수정된 알을 입에 물고 키우는 물고기를 일컫는다. 시클리드 종처럼 보통은 암컷 물고기가 그런 역할을 맡지만 간혹 카디날 피시라는 물고기처럼 수컷 물고기가 그런 역할을 맡기도 한다. 산소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알을 물고 있는 것이 종종 사람들에게 노출된다. 알이 부화하여 치어가 되면 입 밖으로 나간다. 이렇게 될 때까지  입에 알을 물고 있는 기간은 한 달 이상 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알을 입에 품고 있으면 새끼들이 부화할 때까지 물고기는 먹이를 먹을 수가 없어 탈진해서 죽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아기를 출산할 때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옆에서 손을 잡아 주고 힘내라고 말해주거나 순산 호흡을 도와주는 정도고 병원마다 다르지만 아기의 탯줄을 잘라주는 일을 할 수 있다. 전에 우리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의 남편 중 어떤 분은 아내가 아플 때 옆에서 뜀뛰기를 하면서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아내에게 진통이 오면 남편은 옆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진통이 가라앉으면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옆에서 돕는 우리가 보기에는 좀 우습게 보였지만 보기 나쁜 모습은 아니었다.

얼마 전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부족한 병원 주방 용품을 몇 가지 사기 위해 병원에서 멀지 않은 대형 마트에 갔었다. 우리 옆에서 주방 물품을 고르고 있는 젊은 커플은 신혼부부이거나 아니면 곧 결혼을 앞두고 신혼살림을 장만하는 연인처럼 보였다. 여자는 자그마한 인버터를 들고 괜찮은지 어떤지 남자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의견을 물어본다기보다 사실은 여자는 이미 그 인버터가 마음에 들어서 사고 싶은 상태였고  남자에게 통보를 하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게 꼭 필요하겠어?”
남자의 대답은 부드러웠지만 여자가 기대한 답은 아니었던 듯하다. 여자는 다소 장황하게 그 물건이 있으면 얼마나 요긴하게 쓰일지에 대하여 남자를 설득하는 중이었지만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지만 여자의 의견에 대하여 반대라는 건 분명했다. 여자의 목소리 톤이 다소 올라갔다.  처음에 통보를 하던 톤에서 동의를 구하는 톤으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짜증과 원망이 섞인  톤으로 변했다. 그 상황을 나와 함께 목격했던 아내는 그 커플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짧게 한마디 내뱉었다. “바보 같은 놈”
그 남자를 두고 하는 소리였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나에게 하는 소리처럼 들려 뜨끔했다. 젊은 날의 내 모습도 그 남자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남자가 바보 같기는 하지만 그런 바보 같은 놈과 평생 함께 하려고 생각한 여자가 더 바보가 아닐까 싶었다.

[말을 모르는 몸뚱이가, 세상에 편지처럼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나를 어느 반지하방에서 혼자 낳았다. 여름날이었고, 사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빳빳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윗도리만 입은 채 방 안에서 버둥거리던 어머니는 잡을 손이 없어 가위를  쥐었다. 창밖으로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머니는 가위로 방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 어머니는 가위로 자기 숨을 끊는 대신 내 탯줄을 잘라주었다. 막 세상 밖으로 나온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심장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적 속에서 귀가 먹는 줄 알았다.
태어나 처음 본 빛은 딱 창문 크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우리들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아버지가 어디 계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어딘가에 계셨지만 그곳이 여기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늦게 오거나 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펄떡이는 심장을 맞댄 채 꼭 껴안고 있었다. 어머니는, 발가벗은 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을 큰 손으로 몇 번이나 쓸어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위문장은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 "달려라, 아비"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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