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작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
소장: 미국 미시간 디트로이트 미술관

함께 수련을 했던 동기 선생님이 전방 부대 군의관으로 있을 때 이야기다. 병사들이 사용하는 여러 물품의 총 소요 비용과 재고 등을 정리하는 일은  행정병이 담당하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씩 보고서를 받는다고 하였다. 오래전이라 컴퓨터도 많지 않고 컴퓨터로 OA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병사도 많지 않을 때였다. 그나마 그중에서 능력 있어 보이는 병사를 지정해 업무를 맡겨 두었는데 그 병사는 로토스라는 프로그램으로 표를 만들어서 멋지게 인쇄하여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항목 별로 사용 개수와 재고량을 적고 각각 항목별로 총비용은 계산기로 계산도 정확하게 하여 가져왔다고 한다. 현재 잔고가 맞지 않으면 수량과 액수를 조절하여 정확히 대차 대조가 맞도록 하여 상급 부대로 무사히 보고를 할 수 있어서 든든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께서 얼마 후 전역하였고 산부인과 의국에서 컴퓨터를 업무를 하는 나를 보고는 의아해서 물었다. 당시 산부인과 의국에도 컴퓨터가 한대 있어서 교수님께서 시킨 연구 결과 정리나 기타 의국 업무에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계산기도 없이 엑셀 프로그램으로 합과 평균도 계산해서 마무리를 하는 것을 보고는  "아니 그게 계산기도 없이 그렇게 하면 나오는 거였어?" 하고 놀라서 말했다.
"그럼 로터스가 그런 계산하라고 만든 프로그램이니 범위와 수식만 정해주면 자체에서 알아서 계산을 해 주는데 계산기를 왜 써요?"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내가 반문을 하였다.
"내가 군대 있을 때는 병사가 일일이 계산기로 계산해서 적어 넣던데? 합이 맞지 않으면 위의 숫자를 조정해서 바꾸기도 하고."
"무슨 소리예요? 그렇게 하면 그건 조작이지 제대로 된 정산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 아닌가요?"
"야. 편하네. 그런데 그 친구는 그걸 왜 계산기로 했을까?"
"로터스를 미처 제대로 못 배웠나 보죠."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OA 프로그램인 엑셀이나 워드, 액세스 같은  O.A (Office Automation, 사무 자동화) 프로그램이 개발되기 전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대신 지금은 사라진 보석글이나 한글과 컴퓨터로 사명이 바뀐 아래 한글의 워드 프로그램이 사용이 되었고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인 엑셀 대신에  로터스 (Lotus)라는 프로그램이 쓰였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액세스와 같은 데이터베이스는 디베이스 (dBase)라는 프로그램이 쓰였는데 개인적 관심 때문에 나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비교적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선생님이 군대 있을 때의 행정병은 세부 내역의 합으로 최종 결괏값이 나오는 게 아니라 결괏값에 맞추어서 일일이 계산기로 계산해 가면서 세부 내용을 끼워 넣은 셈이었다.  

모든 서비스에는 제공하는 서비스에 합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자선 사업을 하는 기관이나 정부에서 국민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 의료 서비스도 예외가 아니다. 이때 드는 비용은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이 있고 의료 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경우 정부에서 운영하는 건강 보험 공단에서 지불하는 것이 있다.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은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일반 비급여 진료 비용과 보험 급여 중에 일정 부분 본인이 부담하는 부분이 더해져서 정해진다. 입원과 같이 여러 처치가 이루어지고 비용이 드는 편인 의료 서비스에서 보험 급여 부분에 대하여는 두 가지 방식의 지불 방식이 있다. 물론 여기서 지불의 주체는 건강 보험 공단이다.  검사와 처치 항목마다 정해진 수가를 적용하고 전체를 합산하여 계산하는 행위별 수가제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행위 하나하나에 대한 것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한꺼번에 묶어서 정해둔 포괄 수가제다.  양 지불 방식은 장단점이 있지만 여기서는 장단점을 논하지는 않겠다. 산부인과의 분만 관련 수가의 경우 정상 분만은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하여 총액이 정해지고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 포괄 수가제로 비용을 정해두고 있다.

몇 년 전 숟가락 사용료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숟가락 사용료를 받는 식당도 있나?  그런 건 식대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왠 황당한 항목인가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식당이 아니고 어느 산부인과 병원의 입원비 내역에 있었던 항목이다. 숟가락 사용료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 액수가 5000원이라는 것에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둘다가 놀랍거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는 병원이 없겠지만 예전에 어느 병원의 진료 세부 내역서에 실제로 있었던 항목이다. 숟가락 사용료가 아니면 그럴싸하게 입원 물품비라는 이름일 수도 있다.
숟가락 사용료는 포괄 수가제가 아닌 행위별 수가제의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면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고 나서 내는 비용은 포괄수가제인 셈이라 숟가락 사용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설렁탕 한 그릇에 8천 원이라고 하면 그 안에는 당연히 설렁탕과 깍두기를 포함한 반찬, 물, 양념장이 포함되고 숟가락이나 젓가락은 기본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반면 회전 초밥집은 행위별 수가제와 비슷하다. 어떤 접시를 집느냐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물론 이 경우에도 숟가락 사용료를 따로 받지는 않는다. 숟가락은 어떤  음식을 먹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 기본 제공 항목으로 넣어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밥을 떠먹기도 하는 문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카레를 주식으로 먹는 인도라고 하면 카레 국물은 얼마, 밥이나 빵인 난은 얼마, 카레소스의 종류에 따라 얼마, 숟가락을 사용할 경우 얼마 하는 식으로 정해둘 수 있다. 그러므로 숟가락 사용료라는 것이 영 터무니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숟가락 없이 음식을 먹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서 입원료 항목에 숟가락 사용료가 따로 있다는 것은 정도가 좀 심했다. 심하기는 하지만 숟가락 사용료는 영양제 비용이라든가 유착 방지제 비용이라든가, 수면 마취제 비용 추가라든가 사실 그런 것들과 그리 다른 건 아니다.
숟가락 사용료는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런 것이 있었다는 것은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니다. 경제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은 대체로 공급과 수요의 균형에 의해 결정되지만 의료 서비스는  다르다. 공급자에 의해 조절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필요 없는 검사나 치료를 할 수도 있고 어떤 항목의 수가를 경제 논리가 아닌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정할 수 있다. 의료 시장이 완전 독과점은 아니지만 면허가 있는 의사만이 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 시장에 있어서도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경제 논리만이 유일한 기준이라면 의사도 마찬가지로 불법이지 않은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서 돈을 벌면 된다. 그러나 의료 행위란 경제 논리에 의존해서만 할 수는 없다.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기 때문이다.  의료는 영리의 영역과  공공의 영역이 함께 존재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공공 의료의 비중이 높은 반면 미국은 메디컬 케어가 있기는 하지만 영리 의료의 비중이 높다. 각각은 장단점이 있다. 사회 보험 제도의 영국 의료에서는 의사는 많은 일을 할 동인이 없다. 산부인과의 경우 의사 얼굴을 4개월 가까이 되어서야 처음 본다고 한다. 하루에 진료하는 인원은 10명 이내이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의사 입장에서 환자를 많이 볼 이유가 없다. 환자 입장에서 비용은 거의 안 들거나 저렴하지만 진료의 질이 떨어진다. 반면 미국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수입이 늘어난다. 과도한 검사나 치료가 행해지고 검사나 치료 비용도 상당히 높다.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비싸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사회주의 제도인 전 국민 의료 보험이 시행되었으니 외견상 영국식 방식을 띄고 있다. 그러나 의료 보험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많은 비급여 진료가 있기 때문에 일부 영역에서 미국식 영리 의료의 측면이 있다. 따라서 감기 치료나 간단한 검사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검사와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중증 질환으로 치료를 받거나 미용 목적에 가까운 것들, 필수적이지만 정부 재정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병실료 같은 경우는 많은 비용 부담이 환자에게 떠 넘겨져 있다.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는 비용은 저렴하면 저렴할수록, 질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의사들에게 의료 서비스는 비용은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의료 행위에 따르는 수고나 위험은 낮으면 낮을수록 좋다. 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균형점을 찾지 못하면 그 피해는 환자와 의사가 모두 지게 된다. 지금 우리의 의료가 처한 것처럼 의료 서비스는 불균형에 빠져 어떤 진료 과목은 지원자가 몰리고 어떤 진료 과목은 하겠다는 의사가 없다. 의사는 모두 도둑놈이 되며 환자는 모두 진상 고객이 된다. 숟가락 사용료를 보면서 잠시 실소를 머금고 마는 수준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적기에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나 원칙과 양심을 가진 의사가 사라지는 현실은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는 180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미국 출신의 화가다. 1877년 런던에서 그의 작품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이 전시됐다. 이 그림을 본 비평가 러스킨은 그의 그림에 대하여 강렬한 어조로 비난하는 혹평을 신문에 기고했다.
“교양 없고 자만심에 가득 찬 작가가 고의로 사기행각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기에 미술관에 이 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 대중의 면전에 물감을 들이붓고서는 200기니 (우리 돈으로 45만 원)의 값을 부르는 사기꾼의 경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가 한 말이다.
휘슬러는 러스킨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고 결국 재판에서는 휘슬러가 이겼다. 재판 당시 러스킨의 변호사가 휘슬러에게 그림을 그리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물었고 휘슬러는 이틀이 걸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의 가격은 2일의 노동의 대가가 아닌, 그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지식을 얻는 일생의 노동의 대가"라고 반박했다.

어느 차 주인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의 정비를 기술자에게 부탁했다.
차주인: "차가 갑자기 시동이 멈추었네요. 손 좀 보아주세요."
기술자: "예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살펴보고 고쳐 놓겠습니다."
기술자는 차의 구석구석을 살피더니 망치로 엔진의 한 부분을 세게 쳤다. 그러자 시동이 걸리고 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차주인: "다행히 쉽게 고쳤네요. 수리비는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기술자: "10만 원입니다."
차주인: "아니 그냥 망치로 엔진 한대 세게 친 것 밖에 없는 데 10만 원이나 합니까? 10만 원이면 그 망치를 사고도 남겠습니다."
기술자: "망치는 5만 원도 안 합니다. 물론 한번 쓰고 버리는 망치도 아니고요."
차주인: "그렇다면 10만 원 씩이나 청구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고치는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잖아요."
기술자: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디가 문제인지, 어디를 손보면 나아지는지, 최종적으로 망치로 그 부분을 쳐야 한다는 것을 제가 알게 되기까지 저는 10년 동안 공부를 했고 3년간 정비소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수천만의 비용이 들었고 수만 시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차주인: "......."
기술자: "물론 그 비용의 전부를 내시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술을 얻게 되는 데 있어 들어간 보이지 않는 비용이 있다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차주인: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휘슬러는 잘난 척이 심한 데다가 고집이 세서 비평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바람직한 인품의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작품에 대하여  아무도 러스킨처럼 말하지 않는다. 화가의 인품과 작품의 수준과는 관계가 없다. 물론 명작을 남긴 화가가 인품마저 좋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모차르트의 성격이 아주 형편없었다고 해서 그의 피아노곡도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비싼 돈을 내고 저급한 진료를 받거나 안 받아도 될 진료를 받게 되는 것은 문제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심사평가원이 있지만 대부분 나라에 정부가 개입하여 통제를 한다. 반대로 저렴한 비용으로 고급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면 환자 입장에서는 좋다. 그런 점은 정부가 개입하여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사이에 숟가락이 들어가게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숟가락은 전문가들만이 안다. 전문가든 기술자든 누군가의 양심에만 기대해야 하는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난하여 배고픈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에 있는 사람이 양심적이고 선한 정부 당국자나 의사를 만나야 만이 굶주림이나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숟가락 사용료보다는 의사의 기술료라는 이름으로 적절한 지불을 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구차하게 숟가락 사용료를 넣으면서 서글펐을 의사나 숟가락 사용료와 같은 터무니없는 항목으로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하는 환자 둘다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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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ts [2020-06-08 00:05]  adminy [2020-05-07 11:45]  datshu [2020-05-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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