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야간 순찰
작가: 렘브란트 반 레인
소장: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

"삐삐삐삐"

직원: "원장님 아기 심박이 떨어져요."
원장: "빨리 옥시 중지하고 산소 가져와요."
직원: "맥박 80회예요. 원장님."
원장: "산소 2리터로 투여하고 포지션 체인지해요. 왼쪽으로 누우시라고 말씀드려요."
직원" 예. 알겠습니다."
원장:" 산모 바이탈은 이상 없나요?"
직원: "산모는 혈압과 맥박 모두 정상이예요."
직원: "알았어요. 응급 제왕절개 수술해야 할지 모르니까 일단 수술장 준비해 놓아요."

산부인과 의사들은 대체로 성격이 급하다.  밥도 빨리 먹고 무슨 일을 하든 서둘러 마무리한다. 나는  점심을 먹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건강이 좋지는 않지만 다행히 위는 튼튼한 편이라  소화가 되지 않는다든지 채 한다 던 지 하는 등 위장병으로 고생한 적은 없다.  급한 일이 많이 발생하는 진료 과목으로는 당연히 응급 의학과가 일등이다. 응급 의학과 다음은 산부인과가  응급 상황 발생률이 제일 높다. 출산 중이나 출산 후 생기는 과다 출혈이나 진통 중 돌발적으로 생기는 태아의 건강 이상 징후도 시간을 다투는 긴박한 것들이다. 물론 출산 자체도 언제 갑자기 닥칠지 모르는 응급 상황이다.

위에 가상으로 꾸며본 대화는 산부인과에서 흔히 보는 상황으로  전자 태아 심박수 감시 중이던 어떤 산모의 상황을 재현해 본 것이다. 전자 태아 심음 감시는 진통 중인 산모를 대상으로 할 때도 있고 진통이 오기 전인 산모를 대상으로 할 때도 있다. 이 검사는 임신부의 복부에 둥그런 탐촉자를 붙여서 태아의 심박동과 자궁의 수축의 강도를 기록하는 검사법이다.   이 검사에는 비자극 테스트법과 자극 테스트법 2가지가 있다. 이중 비자극 테스트를 흔히 태동 검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태아가 움직일 때 즉 태동이 있을 때 태아 심박수의 일시적인 상승이 있는가 하는 것을 보고  태아의 건강을 평가하는 검사법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자극 스트레스 테스트, 비자극 스트레스 테스트, 음파 자극 테스트는 모두 전자 태아 감시 장치를 산모의 복부에 부착하여하는 검사로 그  방법은 동일하며 단지 자극의 유무나 자극을 주는 방법만이 다를 뿐이다.
이 검사는 1주일 간의 태아의 건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비자극 테스트 또는 자극 테스트는 1주일 간격으로 반복하며 고위험군에서는 1주에 2번 실시한다. 자극 테스트는 비자극 테스트와 마찬가지 방법이지만 유두를 자극해서 자궁 수축을 유도(유두 자극 테스트)하거나 또는 옥시토신이라고 하는 자궁 수축제를 사용해서 자궁 수축을 유도(옥시토신 부하 테스트)하여 태아가 잘 견디는지 보는 검사법이다.  같은 전자 태아 감시를  분만 진통 중에 시행할 경우 이미 진통이라는 자극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비자극 테스트라고 하지는 않고 분만 중 전자 태아 감시라고 부르는데 이때는 태동을 따로 기록하지는 않는다.

몇 년 전에 태동 검사비 환수 사태가 벌어져 산부인과 의료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당시에는 태동 검사는 의료 보험 검사가 아닌  임의 비급여 검사라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 검사였다. 임의 비급여라는 것은 보험 적용되지 않는 검사로 병원에서 자의적으로 일반 수가로 받는 검사라는 의미다. 의료법상에는 보험 급여가 되는 항목과 보험 급여는 적용되지 않지만 본인 부담 100%로 받아도 좋다고 허용하는 항목이 있다. 이를테면  대부분 검사나 치료가 모두 보험 급여가 적용이 되며 골반과 유방 초음파 검사나 식대, 상급병실료 등이 본인 부담 100% 검사들이다. 그런 허가 항목 외에는 따로 받아라 말라는 언급이 없어 태동 검사는 당시 관행 수가로 2만 원 안팎의 비용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떤 산모가 임의 비급여이므로 병원에 환불을 요청하였고 이것이 건강 보험 심사 평가원에서 받아들여져서 병원으로부터 환불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수많은 산모들이 너도 나도 태동 검사비를 환불해 달라고 병원에 요청했다. 한두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몇 년간 태동 감사를 한 산모가 적지 않아 병원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환불을 해 주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  대법원 판결에서는 태동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의사에게 수천만 원의 배상을 하도록 판결한 사례가 있었다.  태동 검사를 실시해서 태아의 건강 이상을 미리 파악했어야 하는데 검사를 하지 않고 제왕절개 수술을 적기에 하지 못하여 태아가 사망했다는 것이 배상 판결의 이유였다. 태동 검사는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검사지만 의료법 상의 미비로 보험 항목에 들어가지 않은 제도적인 문제 탓에 의사들이 많은 손해를 입게 된 사례였다. 이런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고자 하여 당시 진오비 모임 (진오비 산부인과라는 이름은 이 모임에서 유래한 것이다.)과 산부인과 관련 단체들에서 노력하였고 태동 검사비 문제는 의사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환수하는 쪽으로 정해지고 말았다. 이후부터는 제도를 고쳐서 임신 기간 중 1회에 한하여 의료 급여로 검사를 하고 이 범위를 넘어가는 경우 본인 부담 100%로 받아도 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이 태동 검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정말 태아의 위험을 미리 파악해서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심지어는 아무 필요 없이 그저 의사의 배만 불리고 필요 없이 제왕절개율만 올리고 말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제임스 르 파누가 지은 "의학의 모든 역사"라는 책에도 태동 검사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태동 검사는 필요 없는 과잉의 검사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책에서 "출산 중 어느 정도 산소 부족을 겪은 아이들의 84 퍼센트는 태동 검사로 감지하는데 실패하였으며 반대로 태동 검사에서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되었던 대부분 유아는 매우 건강했다"라고 적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태동 검사는 미국의 경우 1970년에 5%이던 제왕절개율이 2016년에  32%로 증가한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태동 검사상 이상이 첫 번째 출산아의 제왕절개의 2번째로 많은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대다수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태아 가사 혹은 태아 곤란증을 알아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태동 검사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의료 영역 밖에서도 그렇지만 의료 영역에서 행해지는 모든 검사나 처치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래서 어떤 검사나 처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에 비하여 지불해야 하는 경제적, 신체적 대가가 어떤가 하는 것을 비교하여 검사나 처치의 여부를 판단한다. 태동 검사로 인하여 생기는 손해는 검사 비용과 하지 않아도 될 제왕절개로 인한 산모의 경제적, 신체적 손해가 있다. 그로 하여 얻는 이득은  태아의 사망 내지는 장애의 발생을 미연에 막았다는 점이다. 산모의 경제적, 신체적 비용과 아기의 희생 중에서 우리가 무엇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태동 검사는 매우 많은 산모들이 받고 있고 3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되어온 검사법이다. 중세 시대 잠깐 붐을 이루었던 사혈 요법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태동 검사든 다른 검사든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외과 수술이 발달하여 간 이식이나 심장 이식 심지어는 심장과 폐를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까지도 시행되고 있다.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수술도 사망률이 아주 높은 수술은 아니다. 그러나 수십 년 전에는 상황이 지금과 달랐다. 아래 문장은 1950년대에 활동하던 심장 수술 전문 외과의사인 윌턴 릴리하이라는 의사가 은퇴하면서 회고한 말이다.
"나는 사망률 200%라는 수술법을 발명한 의사로 역사에 오명이 남을 것이다."
심장에 작은 구멍이 나서 심실들 사이로 혈액이 새어 나가는 선천성 심장 기형이 있다. 그는 그런 기형으로 죽어가는 다섯 살짜리 꼬마를 저체온 법으로 마취한 후에 수술하여 살려내었고 이후 같은 방법으로 여러 아이들의 생명을 구했다. 그러나 저체온 법이 안고 있는 제한 즉 수술 시간이 10 분 이상을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한계 때문에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민하던 그는 저체온 법의 한계를 피하기 위해 심장병을 가진 아이와 그 부모의 혈관을 직접 연결하여 심장 수술을 10 분 이상 연장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술 중에 연결된 플라스틱 관을 통하여 공기 방울이 부모의 혈관 속으로 들어가서 부모가 심장 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부모와 혈관이 연결되었던 아이도 사망했다. 그가 수술에 실패한 이후 문제점을 개선하여 이후에는 그런 문제로 부모가 사망하는 경우는 없었다. 심각한 심장 이상을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수술에서의 아이의 생존율은 63%로 높아졌다. 그를 비롯한 의사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시술법 도입 초기의 환자들의 이해와 희생 덕분에 지금은 심장 수술은 그리 위험하지 않은 수술이 되었다.

몇 년 전 척추 신경관의 이상으로 하지가 마비되는 기형인 신경관 결손증 태아를 출산 전에 진단해 내지 못했다고 해서 의사를 심하게 원망하는 산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리 알았다면 아이가 아예 태어나지 못하도록 했을 텐데 그런 선택을 할 기회를 아예 가지지 못한 점 때문이라는 것이 원망의 이유였다고 한다. 기형아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와 다운 증후군을 진단해 내지 못하였다고 해서 오진에 대한 배상을 해 달라고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소송한 산모도 있다고 들었다. 물론 그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아직은 효과적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 숱한 재활 치료받아야 하고 치료비도 적지 않게 들어 아이나 부모 모두 힘든 삶을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심각한 심장 기형을 가진 아이들의 부모들이 발달된 초음파 진단법으로 이상 여부를 출산 전에 정확히 알아내고 알아낸 모든 산모가 출산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했다면  아마 지금도 많은 아이들은 심장병은 불치병이라고 여겨져 수술도 받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지금도 암이나 에이즈 등 많은 병들이 불치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로부터 희망을 빼앗아 간다. 그러나 의학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학문이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질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멈추지 않는 한 불치병은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불치병이 아니라 아직 효과적인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은 질병이 있을 뿐이다. 지금 불치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병들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극복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고치고자 하는 의사와 환자 또 주위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 지, 질병을 이기고자 하는 자세가 얼마나 적극적인지에 따라 그 시간이  당겨지거나 늦추어질 것이다.

태동 검사나 심장 수술이 과거에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 새로 개발될 검사나 처치도 그런 것처럼 모든 시도에는 비용이 들고  위험한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다. 그늘이 없는 빛은 없다. 그늘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 빛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생명의 문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최소한 의사는 그늘보다는 빛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면 좋겠다. 오래전 학창 시절에 폐암을 전문으로 다루는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말기 폐암에는 수술도 소용이 없고 방사선 치료도 효과가 거의 없다. 그래서 유일한 선택이 치료를 포기하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는 것이거나 아니면 항암제를 이용한 치료를 받는 것뿐이다. 학생 때 내과 실습을 돌면서 말기 폐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을 회복해서 퇴원하는 경우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좋아졌다고 해 봐야 그저 얼마간 생명을 연장하는 정도뿐이었는데 그나마도 병원에 누워 온갖 장치를 몸에 달고 연명하는 모습이었다. 결코 행복한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몇 년 전에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법률이 제정된 것도 그런 점 때문이다. 내가 산부인과를 의사를 평생의 업으로 택하기 전에 내과 의사를 평생의 업으로 택해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암환자 내과 병동을 돌고 나서는 그 생각을 접었다. 그 당시 내과 회의 시간에 학생들이 말기 폐암 환자가 항암제 치료로 완치되는 경우도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되는지 교수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교수님께서는 아직 완치 사례는 없다고 대답하셨다. 그렇다면 겨우 몇 달 정도의 생명 연장을 위해 이런 힘든 과정의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학생들이 다시 물었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그렇게 대답하셨다.

"다만 몇 달간의 생명 연장도 그 환자에게는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완치한 사람이 없지만 완치를 위해 누군가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말기 폐암은 사망 선고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그런 노력을 하라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노력하라고 해서 만들어둔 사람들이 우리 의사 아니겠느냐?"
그 교수님 때문이든 여러 내과 의사들의 노력 때문이든 지금은 말기 폐암의 생존율은 0%보다 훨씬 높다. 심지어 지금은 에이즈 조차도 불치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작품밖에 팔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내내 외로운 삶을 산 고흐나  변호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궁정화가로 살면서 평생 어려움 없이 살다 간 벨라스케스도 있지만  한 평생 살면서 빛과 그늘을 오간 굴곡의 삶을 산 화가들이 적지 않다. 그중 제일은 아무래도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다. 렘브란트는 삶 못지않게 작품조차도 빛과 어둠이 어우러진 명암법으로 유명하다. 그는 강렬한 명암과 영혼을 담은 듯한 그림으로 젊은 시절에는 시장의 딸과 결혼할 정도로 초상화가로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말년에는 자신만의 회화 세계에 빠지기도 했고 당시 사회가 밝은 그림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어 그에게 초상화를 의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식과 아내도 그보다 먼저 죽고 만  상황에 경제적으로는 파산 선고를 받아 집과 작품 모두 남은 것이 없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겨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기 실은 렘브란트의 그림 "야간 순찰"은 원래 낮의 순찰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두운 주변 환경 때문에 밤이라고 오해하여 후세의 사람들이 "야간 순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두운 배경이 된 이유로는 몇 가지 주장이 있는데 렘브란트가 중심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을 어둡게 칠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그림은 낮의 풍경을 그렸다는 점 말고도  흥미 있는 소문이 하나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그림값을 나누어 지불하기로 하고 의뢰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보다시피 뒤에 있는 사람들은 어둡기도 하고 앞사람에게 가려지기도 하여 잘 알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뒷 배경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값을 지불하지 않아 렘브란트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며 가운데 있는 검은색 옷을 입은 대위가 지금 돈으로 1000만 원쯤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했다고 한다.  내 생각이지만  설사 소문대로 뒷 배경의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으면 그림 값의 대부분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해도 렘브란트가 뒷 배경의 사람들을 밝게 하였을 것 같지는 않다. 렘브란트에게 어둠이란 빛을 드러내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치료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과 합병증은  당사자인 환자들도 그렇지만 의사들도 결코 바라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100% 안전하고 확실한 성공만이 보장되는 처치나 수술은 거의 없다. 많든 적든 처치가 실패할 가능성,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부작용과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은 의사로 하여금 해당 치료를 포기하도록 만들거나  방어적 진료를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부작용과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이 의사로 하여금 성공적인 치료를 이끌어 내기 위해 자만하지 말고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가이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어둠 속의 빛을 볼지 아니면 빛 속의 어둠을 볼 지는 의사 자신에게도 달렸지만 의사의 도움을 받는 환자나 산모에게도 달려있다. 모든 의료 행위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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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ts [2020-06-08 00:27]  daphne [2020-05-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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