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엄마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소장: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7층 건물의 3층, 4층에 임대로 들어있다. 전에 1층에 식당이 있을 때는 바퀴 벌레가 종종 출몰했다. 지금은 1층에 있던 식당이 나가고 커피숍으로 바뀌기도 했고 바퀴 벌레를 잡는 약도 설치해 두어서 바퀴 벌레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드물기는 하지만 간혹 눈에 뜨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직원들에게 빨리 잡으라고 시킨다. 문제는 주변에 직원이 아무도 없을 때다. 실제 있었던 일을 상황극으로 꾸며본다.

원장:  (일단 도망가기 전에 멀리서 안 보는 잡지를 던져서 깔려 죽게 한 후) 아무도 없어요?
직원:  (대답이 없다.)....
원장:  (큰 소리로) 한사람 여기 잠깐 와 볼래요?
직원:  (대답이 없다가 잠시 후 멀리서 작은 목소리로) 왜요? 원장님.
원장:  (역시 큰 소리로) 누구 거기 있어요?
직원:  (멀리서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저 미O인데요. 왜요 원장님?
원장:   3층 복도에 잡지 떨어져 있으니까 가서 치워요.
직원:  (소리가 아까보다 가깝게 들린다.) 원장님이 치우시면 되잖아요.
원장:  (몰래카메라 찍는 기분으로 속으로 웃으면서) 나는 빨리 올라가 봐야 해서 그래요.
직원:  알겠어요.
원장:  (안쪽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면서) 그럼 난 올라가니 잘 치워요.
직원이 떨어진 잡지 쪽으로 가는 사이 잠시 침묵이 흐른다.
직원: 아악....... 원장님!!!
원장: (자리를 피해 도망 가면서) 잘 치워요. ㅋㅋ

이런 나를 보고 직원들은 불만이 많다. 그러나 남자라고 해서 벌레를 안 무서워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책을 던져 잡는 것까지는 내가 했으니 치우는 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체로 여자들이 벌레를 더 무서워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지낼 때도 벌레는 아내가 잡는 편이다. 큰 딸은 벌레를 엄청 싫어해서 파리만 봐도 질겁을 한다.  큰 딸이 특히 무서워하는 벌레는 흔히 돈벌레라고 하는 그리마다.  윤충이라고도 하는데 다리가 굉장히 많다. 사람들이 왜 벌레를 무서워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독충을 피하는 방어기제로 그런 심리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 사람에게 위험한 벌레는 그리 많지 않다. 흔하게 보는 모기나 파리도 위험하다기보다는 그저 귀찮을 뿐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미도 독을 가진 것은 35000 종의 거미 중 30여 종이라고 하니 0.1%에 불과하다.  독거미로 알려지고 내 딸이 좋아하는 타란툴라 거미도 대부분 독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거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가는 몸통에 긴 다리, 새까맣고 튀어 나온 눈이 있는 데다 몸통에 털까지 있어서 무서운 요인을 많이 갖추어서 일 것이다. 물론 교미가 끝나고 나면 수컷을 잡아먹는 암거미는 수컷 거미 입장에서는 정말 무서운 존재가 틀림없다. 검정 과부 독거미 이야기다. 그야말로 팜므파탈 거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라크네는 베짜기와 자수 능력이  뛰어나서 기술의 신이자 길쌈의 여신인 아테나와의 대결에서 전혀 꿀리지 않는 솜씨를 발휘했다. 그러나 여신의 분노를 사서 두들겨 맞고 그 치욕감으로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아테나 여신은 아라크네를 불쌍히 여겨 약초 추출물로 살려 냈지만 대신 평생 줄 끝에 매달려 사는 거미로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며칠 전에 온 환자분은 주사를 맞으면 기절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주사 공포증이 있었다. 주사 공포증은  첨단 공포증의 범주에 들어간다. 첨단 공포증은 선단 공포증이라고도 불리는데 주사 바늘이나 칼 등 끝이 날카로운 것을 볼 때 공포증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공포증은 불안 장애의 일종으로 특정 대상에 과도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심장 박동이 빨리지고 호흡 곤란증이 생긴다.  고소 공포증, 폐쇄 공포증이 유명하지만 사람들이 제일 많이 느끼는 공포증은 뱀 공포증이라고 한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폐쇄 공포증은 여자의 2.7%, 남자의 1.4%에서 나타났지만 뱀에 대한 공포증은 여자의 55%에서, 남자의 20%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뱀 다음으로 많이 느끼는 것이 거미 공포증이다. 그러나 루이즈 부르주아에게는 거미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이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00세로 사망하기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여성 작가다.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양탄자 수선 사업을 했으며 그녀도 8살 때부터 양탄자 도안을 그리는 일로 가업을 도왔다.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언을 일삼고  자녀들에게도 자상한 아빠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브르주아가 친언니처럼 따르던 가정교사와 외도를 하고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런 남편의 행태를  참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녀가 스물 한살이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 어두운 가정사는 그녀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남겼지만 작품 활동을 하게 된 동력을 주기도 했다.  그녀의 대표작은 90살에 만들었다고 하는 "마망"이라는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이다.  마망은 우리나라 말로는 엄마에 해당한다. 딱딱하고 격식을 차린 단어 어머니가 아니고 아이들이 찾는 그 엄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거미 마망은 날카로운 8개의 발에 쇠로 된 몸통을 가지고 있고 흰색의 대리석 알을 담은 주머니도 그렇지만 그렇게 포근한 이미지는 아니다. 그녀는 겉모습이 아닌 거미가 가진 생물학적 특성에서 어머니의 모습에서 보았다. 그녀의 말에도 있다시피 마망은 그녀 자신의 어머니가 모티브다.

“거미는 나의 어머니께 바치는 송시입니다.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죠.
거미처럼, 내 엄마는 베틀에서 베를 짜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타피스트리 복원 사업을 했고 내 엄마는 공방의 책임자였어요.
거미처럼, 내 어머니는 매우 영리했습니다. 거미는 모기를 잡아먹는 친근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기가 질병을 퍼뜨린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거미들은 우리를 돕고 보호하는 거지요, 내 엄마처럼 말이에요.”

나는 고소 공포증은 없고 거미나 벌레를 싫어하긴 하지만 공포증 정도는 아니다. 나에게 있어 공포증이라고 하면 벨소리 공포증이 있다. 벨소리는 다른 경우에 들을 일은 없고 거의 대부분 벨소리는 전화기의 벨소리다. 휴대전화든 일반 전화든 갑자기 전화기 벨이 울리면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난다.  전화기가 울리면 나는 응급 산모에 관한 것이거나 입원하고 있는 산모나 아기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가족들은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꼭 필요하면 문자를 하거나 직접 만나서 말로 전한다.  직원들에게도 아주 중요하고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는 것은 피하도록 지시해 두었다. 문자나 컴퓨터의 메시지 앱을 통해서 필요 사항을 전달하거나 아니면 직접 와서 말하도록 해 두었다. 이런 공포증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산부인과를 전공하면서 생긴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하겠다. 응급 질환을 다루는 응급 의학과를 빼고는 산부인과만큼 응급이 많은 진료과는 없다.

전에 한참 그림을 그리던 시절 예술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예술의 목적이 아름다움에의 추구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많은 예술 작품들은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 미술 작품을 보면 미술이든 음악이든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로 보기 어려운 작품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미학자가 아니라 예술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예술은 과학처럼 목적이 중요한 분야가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한 분야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삶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도구로서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으로서의 삶이다. 과학에서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만 예술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론 브르주아가 말한 것처럼 예술을 그 자체로 즐기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이들도 있다.

"나이 백 살까지 그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사랑과 희망, 용서의 메시지를 놓지 않고 싶어서이다. 예술의 목적은 두려움을 정복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그녀에게 예술의 목적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의 해소 혹은 용서,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랑과 헌사다.
자신의 삶을 삶 자체로 즐기고 거기에 더해 살아가는 목적을 분명히 찾고 얼마간이라도 그런 목적에 맞게 살다 갈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그러므로 100살의 인생 중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불과 일이십 년에 불과했지만  루이스 부르주아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의사로서의 목적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니 내과도 있고 외과도 있는데 하필 산부인과냐?"
이 말은 인턴 과정을 마치고 산부인과 전공의에 지원할 무렵 부모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전문의가 되기까지는 2년의 의과대학 예과 과정과 4년의 의과 대학 본과 과정을 졸업하고 1년의 인턴 과정을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4년의 전문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40개월의 군 복무 혹은 대체 복무도 필수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18개월의 군 복무 기간만 마치면 되는 것에 비하여 2배 이상 긴 기간이지만 군 복무 기간을 빼더라도 전문의가 되기까지 10년의 적지 않은 기간이 걸린다. 따라서 어떤 진료 과목을 자신의 전문 분야로 삼을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과 대학을 마치면 해부학이나 생리학처럼 기초 의학을 연구하는 쪽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고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임상 의학 쪽으로 나가는 의사가 있다. 임상 의학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4대 메이저 과목이 있고  그 외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비뇨기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마취과, 임상 병리학 등 여러 마이너 과목이 있다. 그런 여러 과목 중에 자신의 취향과 장래성을 감안하여 과목을 선택한다. 물론 선택한다고 해서 다 전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메이저 과목보다는 마이너 과목들이 인기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다. 시대에 따라 지원자들이 선호하는 진료 과목은 다르다. 정재영이 인기 있을 때도 있고 피안성이 인기 있을 때도 있다. 정재영이나 피안성은 사람 이름은 아니고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 의학과의 앞글자를 모으거나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의 앞글자를 모은 단어다. 인기 있는 진료 과목을 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 성적과 인턴 성적이 좋아야 한다.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기 위해 법대 성적과 사법시험 성적, 연수원 성적이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의대도 그와 마찬가지다. 어렵다는 의과대학을 들어가서도 또 그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  원하는 진료 과목을 하기 위해 자신의 출신 대학 병원이 아닌 다소 규모나 인지도가 떨어지는 병원으로 낮추어서 지원하기도 하고 대학처럼 재수를 하는 사람 사람도 있다.

출산율이 높았던 60, 70년대는 산부인과가 인기가 있었다고 교수님들께 들었지만 내가 산부인과를 지원할 무렵이던 80년대 후반에는 그다지 인기 있는 과목은 아니었다. 출산율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고 소위 3D (Difficult, Dangerous, Dirty) 과목이라고 알려져서 생활의 질을 중요시하는 요즘 의사들에게는 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원할 당시는 산부인과는 대부분 병원에서 정원을 살짝 넘기는 정도로 중간 정도의 인기가 있었고 지금처럼 지원자가 필요 인원의 반도 안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진료 과목과 달리 산부인과를 선택하려고 할 때는  취향과 장래성 외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남자의 경우 여자들의 내밀한 부분을 다루는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것이나, 여자가 남자들의 성기를 주로 다루는 비뇨기과를 선택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의사가 용기가 있다고 해도 부인과 환자나 산모에게 남자 의사란, 반대로 남자 비뇨기과 환자에게 여자 의사란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산부인과를 지원할 당시 산부인과 남자 의사 대 여자 의사의 비율은 10:1 정도였다. 지금은 오히려 그 비율이 역전돼서 남자 산부인과 의사는 전체 산부인과 의사의  1:10도 되지 않는다.  그 당시 부모님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내다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아마도 힘든 업무 환경이 걱정이 돼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출산은 언제 될지 모르는 일이라서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편안한 숙면이란 사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히 잘 자고 싶은 것은 기본적인 욕망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특히 분만을 돕는 산과 전문의로 살기로 한다면 그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그런 힘든 점보다 어쩌면 여자를 다룬다는 점이 더 마음에 걸리셨을 듯싶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남자로서 내가 왜 산부인과를 택했는지 궁금해한다.

오래전 부모님께서 "왜 하필 산부인과냐?"하고 물으셨을 때 내가 무어라고 말씀을 드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내 대답에 부모님께서 흔쾌히 동의하셨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지금 와서 다시 부모님께서  "왜 하필 산부인과냐?"  물으신다면 이제는 그렇게 대답해 드리고 싶다.
"출산을 돕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아무도 안 한다는 데 어떻게 해요? 저라도 해야지."
물론 그렇게 말씀드리면 그때와 마찬가지로 부모님께서는 마뜩지 않아하실 것이다. "네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누군가 하겠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 말고도 지금 출산 현장을 지키고 있는 나이 든 의사들 말고도 누군가 후배들이 이 일을 하겠지 하고 믿고 싶다. 아니면 의사가 넘쳐나서 택시 운전도 한다는 필리핀과 같은 외국에서 산부인과 의사만이라도 수입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우리나라 임신부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의 의사가 아닌 우리나라 의사들 그것도 최고의 실력과 나는 없지만 한없는 자상함을 가진 의사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성형 수술 환자들이 받는 그런 대접 말이다. 물론 그때 드는 일체의 비용은 정부가 낸다. 이것이 의사로서 내가 가진  바람 중 하나다.

그런 바람 말고 평소 내가 가진 목표에 대하여는  "원칙을 지키며 산모들의 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홈페이지에 적어둔 내 좌우명을 목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낯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안 하니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임신한 산모들의 목적이 간단하게  건강한 아기의 순산인 것처럼 나의 의사로서의 목적, 또는 의술의 목적도 "잘 마무리하고 홀가분하게 사는 것"으로  정해두어야 겠다. 요즘은 매장을 하지 않으니 묘비를 세울 일이 없지만 혹시 묘비명으로 쓴다면  "잘 마무리하고 홀가분하게 갔음" 쯤 되겠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짤막한 묘비명  "불려 갔음"에서 힌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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